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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장애인은 최저임금 안 줘도 된다?···법의 허점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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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조금 받아요.”

발달장애인 김모씨(25)는 지난 3월까지 한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했다. 하루 8시간씩 전기부품을 단순 조립하거나 가공하는 지루한 일을 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20만원이 채 안됐다. 시급 6479원인 올해 최저임금의 반도 안된다. 고용주의 횡포 때문에 불법으로 착취당한 것은 아니다. 법대로 하면 합법적인 임금이었다. 김씨가 가진 장애 때문에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악용되는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제도’

내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60원이나 올랐지만 김씨와 같은 적용 제외 장애인들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김씨는 아버지가 직장을 이동하면서 온 가족이 이사하게 되어 다니던 직업재활시설을 그만뒀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일자리를 구해볼 생각도 했지만 아직은 망설여진다. 김씨의 아버지는 “어차피 월급 수준은 보호작업장이면 거기서 거기라 돈을 더 많이 받기를 기대하진 않는다”면서 “일에 재미를 붙일 수 있고 재활에 도움이 되는 작업장을 찾고 있지만 여건에 맞는 곳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모든 임금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제가 장애인들에게만 예외인 것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제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장애가 업무수행에 직접적으로 현저한 지장을 주는 것이 명백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한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정하고 있다. 장애인 노동자에 한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줄 수 있게 한 이 조항의 원래 취지는 중증 장애인일수록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만큼 더 낮은 임금을 받더라도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업무수행에 확실히 지장이 있는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줘도 되는 면죄부처럼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 장애인단체들의 주장이다.

장애의 유형과 정도에 따라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개개인마다 다 다르다. 때문에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시행 중인 직업능력평가는 장애인 노동자의 업무수행능력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임금수준을 제시하고 있다. 일부 업무에 지장이 있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더라도 업무수행능력에 맞는 임금수준은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평가 결과 시간당 4000~5000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인정받더라도 현실에선 먹히지 않는 것이 문제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장애인 노동자의 평균 시급은 지난해 기준 2896원으로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2012년 279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년 동안 거의 오르지 않은 채 유지돼 왔다.

장애인들을 위해 마련된 직업재활시설은 크게 근로사업장과 보호작업장으로 나뉜다. 가장 큰 차이는 근로사업장에서는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는 반면 보호작업장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전체 직업재활시설 장애인 중 근로사업장 소속 장애인은 17.4%에 불과하다. 나머지 82.6%는 이른바 ‘훈련생’이라고 불리는 장애인 노동자들로 보호작업장에 소속돼 직업훈련을 겸한 노동을 수행한다. 보호작업장의 장애인 중에서는 중증 장애인 비율이 95%를 넘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재활 및 사회적응 훈련 등도 함께 이뤄진다.

이들에게 통용되는 ‘훈련생’이라는 표현과 노동을 하는 한편 일터 안에서도 돌봄과 복지를 받아야 하는 이중적인 상황은 이들을 더욱 보통의 노동자로 바라보기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간 논란이 돼 왔던 이들의 법적 ‘근로자성’에 관한 공방은 2011년 10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로 일단락됐다. 이들 역시 법에 따라 ‘근로자’의 지위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결론난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적용 제외라는 또 하나의 구분 때문에 현실적인 의미는 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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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돌봄을 받는 이중적 상황

장애인만을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키는 현재의 제도가 문제점들을 낳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면적인 최저임금 보장도 문제를 즉각 해결해줄 수는 없다는 점은 딜레마다.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논거 중 하나인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고용이 줄어든다’는 명제가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논란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현재 합법적으로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에 노동력을 활용하는 보호작업장 등의 사업장은 급작스럽게 임금수준이 올라가면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구체적인 정황을 알 수 있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을 운영하는 사업장의 경우 낮은 임금으로 인건비 부담을 줄여 채산을 맞추는 측면도 크지만, 장애인을 고용함으로써 ‘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사업의 이점으로 작용한다. ‘중증 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에 따라 정부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는 기관별 총구매금액의 1% 이상을 중증 장애인이 생산한 제품으로 구매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화장지나 서류봉투, 면장갑 등 소모품류가 전통적인 장애인 생산품이었던 데 더해, 농산물 등으로 구매 품목 역시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이 납품시장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직업재활시설마다 생존을 위해 다각도로 방안을 모색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 보호작업장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전모씨는 “(작업장에) 들어올 때는 사회복지사로 들어왔는데, 실제 하는 일을 보면 생산직에 유통 및 배달에 검수까지,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돼 있다”고 말했다. 지적장애 등 발달장애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대부분의 보호작업장의 특성과 공공기관 납품이 용이한 품목에 맞춰 생산목록을 결정하게 되는 사정이 맞물린다. 결국 대다수 작업장에서는 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원료를 단순히 가공하는 ‘임가공’ 작업 위주로 맡기게 된다.

게다가 보호작업장의 본래 역할이기도 한 근무시간 내 장애인 노동자 돌봄 및 재활훈련 등의 임무 역시 손 놓을 수는 없기에 이들 비장애인 직원의 업무부담 역시 가중된다. 발달장애인에게 힘든 업무는 그들을 ‘돌볼’ 책임이 있는 사회복지사나 직업재활사 등에게 넘어간다. 사회복지사 전씨는 “말로는 여기 있는 장애인들에게 직업재활 기회를 줘서 일반적인 회사에서도 일자리를 구하고 자립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바람대로 일반 사업장에 갈 수 있는 장애인은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단순작업만 반복하는 작업장의 환경도, 냉정하게 말해 재활이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장애의 특성도 모두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어쩌다 사회적기업 같은 장애인 고용 일반 사업장에 취직해서 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장애인을 보면 너나 없이 분위기가 무거워진다”고 전씨는 덧붙였다.

제빵기술과 교육 경력이 있어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 빵을 만드는 직업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이모씨가 털어놓는 현실도 비슷하다. 다양한 장애를 가진 장애인 노동자들의 업무수행 범위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비장애인 직원들이 모자란 부분을 메우면서 생기는 불만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장애가 있어도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하고 익숙해진 일 말고는 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어서 애초에 일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를 정할 때부터 어려움이 많다”며 “일률적으로 똑같이 최저임금을 적용해주는 것이 좋기야 하지만 다른 직원들도 그렇고 고용주 입장에서도 ‘내가 그 돈으로 왜 장애인을 고용하나’ 하는 물음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 생산품을 공공기관 등에서 일부 의무구매하는 지원책마저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시키면서 고용까지 늘릴 수 있으려면 사업주들에게도 보다 확실한 유인이 필요하다. 장애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해도 되도록 노동부 인가를 받는 건수는 매년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7935명으로 2012년 3258명에 비해 2.4배 증가했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낮은 임금이 장애인 고용을 유발하는 효과는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최저임금과의 차액을 정부가 보전하는 방안이 가장 실현시키기 손쉬운 방안이라고 장애인단체들은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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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지원하면 4년간 3874억 소요

국회에 발의된 최저임금법 개정안 관련 비용추계서를 보면 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기 위한 재정을 국가에서 지원할 경우 올해부터 2021년까지 4년간 약 3874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노동부의 2015년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기금 결산 자료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금이 5049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예산 확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단체총연맹은 최저임금 인상 후 내놓은 성명에서 “정부는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지원대책에서 최저임금 인상분에 대해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장애인 최저임금 지원에는 ‘장애인고용기금’이라는 확실한 재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용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단체의 주장대로 정부의 지원으로 최저임금 전액을 보전하는 방안은 관련 전문가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정책방향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당장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 외에도 급격한 정책 변경이 부를 수 있는 부작용 등의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보다는 재활이나 보호가 시급한 중증 장애인들까지 노동시장으로 몰려나오게 돼 오히려 중증 장애인의 사회 적응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등의 문제도 있다. 장기적으로 정부의 재정이 부족하게 될 경우 올라간 임금을 개별 사업장이 부담하게 될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생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폐지하는 점진적인 정책 변화를 시도할 경우 ‘장애인 직업적응훈련시설’을 통해 임금인상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변경희 한신대 교수(재활학)는 “근로능력이 떨어지는 최중증 장애인을 위한 별도 시설을 만들고, 그밖의 직업재활시설에서 근무할 경우에는 점차적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노동환경에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최중증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신설할 경우, 그보다는 업무능력이 뛰어난 장애인들에게도 수월한 업무환경이 만들어져 과도한 노동시간이나 휴식시간의 부재, 사고나 질병이 발생해도 보호가 미흡한 등의 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감액적용제도가 대안으로

최저임금 감액적용제도도 현행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제의 대안으로 일각에서 나온다. 감액제는 장애인의 일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최저임금보다 일정 액수를 덜 주는 대신 부족분은 정부가 고용보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정부 보조금으로 최저임금을 보장해주는 점은 동일하지만 업무능력이 인정된 장애인을 고용할 경우 고용주의 부담도 다소 늘어나는 셈이다. 때문에 직업재활시설 사업주나 장애인단체 모두로부터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는 한계도 갖고 있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외에 일반 기업에서 현재 최저임금을 보장받고 일하는 장애인들의 임금은 오히려 깎게 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결국 궁극적으로는 모든 장애인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장애인들이 일반 기업에서도 쉽게 적응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정책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별히 인지장애가 없는 장애인들은 편의시설과 업무에 보조가 되는 기기를 지원하면 일반적인 일터에서도 일하는 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의 직업재활시설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열악한 지원 상황을 감안해 정책 시행 스케줄을 짤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중증 장애인 노동권 증진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일하는 장애인에게 임금을 보전하면 장애인연금 혜택 효과도 주고 근로의욕도 높일 수 있다”며 “직업재활시설이 없는 지자체가 45개나 있는 현실을 감안해 중앙정부로 해당 업무를 환원해야 하지만, 당장 실행되기 어렵다면 중앙정부가 시설 설립이라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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