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
# 대학생 A씨(20·여)는 이름 모를 남성에게 협박을 당했다. 휴대폰 무작위채팅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A씨는 채팅에서 만난 남성 B씨와 재미삼아 야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갑자기 B씨가 대화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며 특정 신체 부위 사진을 요구했다. A씨는 결국 사진을 보내줬고, B씨는 더 높은 수위의 사진을 요구하며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디지털 성범죄가 진화하고 있다. 인터넷 사용 환경이 복잡·다양해지면서다. '몰래카메라'를 넘어 최근에는 헤어진 연인의 은밀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유포하는 '리벤지 포르노'와 지인의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해 유포하는 '지인능욕'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검찰청의 '2015 범죄분석'에 따르면 인터넷 등을 이용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글이나 영상 등을 유포한 범행 건수는 2005년 164건에서 2015년 1139건으로 약 7배 늘었다. 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된 개인 성행위 영상 유출 신고 건수는 2012년 1818건이던 것이 2015년 6856건으로 급증했다. 온라인 파일공유 사이트 등에서는 '국산 야동'으로 불리는 성관계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가 급증하며 '디지털 장의사'라는 신종 직업군까지 등장했다. 동영상 등이 한번 유포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버리는 탓에 개인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디지털 장의사들은 온라인에 올라온 글과 동영상 등을 파악해 삭제해주고, 신고를 대비해 증거를 수집해주는 역할을 대행한다.
문제는 디지털 성범죄는 나날이 진화하는데, 이를 처벌할 법령에는 '사각지대'가 남아있다는 데 있다. 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DSO·digital sexual crime out) 관계자는 "인터넷 환경의 발달 속도에 맞춰서 관련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리벤지 포르노' 등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근거가 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14조는 카메라 등으로 다른 사람의 신체를 의사에 반해 촬영하거나 촬영물을 공개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의 하에 촬영을 했어도 사후에 의사에 반해 공개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러나 이 조항으론 다양한 신종 디지털 성범죄들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해당 조항이 '타인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한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탓에 A씨처럼 자신이 직접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경우 촬영물 유포자에게 이를 적용할 수 없다. 명예훼손죄 등만 적용할 수 있다.
신체 자체가 아니라 이미 촬영된 신체 사진이나 영상을 다시 촬영한 경우에도 처벌을 못한다. 대법원은 2013년 인터넷 화상채팅으로 받은 여성의 신체 일부의 영상을 휴대폰으로 촬영한 40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여성의 신체 사진이 담긴 컴퓨터 모니터를 촬영한 것은 '타인의 신체'가 아닌 '모니터'를 찍은 것이라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대신 여성을 협박해 사진을 찍도록 한 혐의만 유죄로 봤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 차원에서 보완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자신이 자신의 신체를 직접 촬영한 경우에도 이를 의사에 반해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성폭력처벌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미 촬영된 타인의 신체를 재촬영해 유포하는 행위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 국회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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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현재의 성폭력처벌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등은 모두 음란 촬영물을 유포, 유통한 행위자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 7은 정보통신망을 통해 음란한 부호 및 영상 등을 배포하거나 전시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은 파일공유 사이트 운영자가 위법한 음란물의 업로드와 다운로드를 제한하는 장치를 갖추도록 하고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도록 한다.
이와 관련, 촬영물 유포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위법한 영상물을 내려받거나 보유만 해도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큰 원인 중 하나는 각종 성인 사이트, 파일공유 사이트를 통해 촬영물이 쉽게 퍼져 나가는 현상 때문이란 지적이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추정 영상은 10만건에 달한다"며 "영상물이 광범위하게 퍼지는 것을 막으면 피해자를 줄일 수 있는 만큼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정수 기자 jeongsu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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