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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관음의 나라] “몰카 언제 다시 유포될지…” 피해자들 공포에 치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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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도 지워도 끝없는 흔적들

연인이 가해자로 신상 공개 등

정신과 치료 불구 극복 힘들어

영상삭제 디지털 장의사 고용에

매달 300만원 내며 고된 노동도
한국일보

몰래카메라 범죄의 피해를 입은 이들은 인간에 대한 배신감, 회수되지 않는 촬영물에 대한 공포, 개인정보 침해 등의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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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카메라 사진이나 동영상이 언제 다시 유포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가족이나 지인이 그걸 알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너무 커요. 이름도 주민번호도 다 바꾸고 싶어요. 그 사람이 영상을 다른 곳에 남겨뒀으면 어떻게 해요? 다시 올리면 어떻게 해요?”

지난해 한국여성변호사회의 심층면담에 임했던 30대 여성 피해자는 가해자가 입건된 후에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연인이었던 가해자가 인터넷에 올린 몰카 동영상을 직접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고 재판까지 진행됐지만, 어딘가에 영상이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몰카 범죄의 피해자들은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딘가에서 유포가 계속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호소한다. 자신이 잠든 사이 남자친구가 사진을 찍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것을 보고 경악했던 대학생 A씨는 “수년간 사귄 남자가 ‘평소 행실이 지저분한 여자인데 잠자리 하려고 만나준다’며 허세 가득한 글과 내 사진을 올린 것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연인으로부터 몰카 가해를 당한 40대 여성은 “동영상과 함께 개인정보까지 유포된데다가, 그 사람이 내 집과 직장, 신상정보를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며 “정신과 치료와 수면제 처방, 심리상담 등을 받았는데 사건을 돌이켜 이야기하는 게 힘들어서 치료를 지속하진 못했다”고 한국여성변호사회 면담에서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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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인 김현아 변호사는 “몰카 장비에서 영상이나 사진이 삭제된 것처럼 보여도 자동저장 및 업로드 기능이 있어 클라우드 등에 저장돼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수사기관이 이를 면밀하게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가해자 거주지에 있는 USB, 노트북 등 다른 저장매체에 대한 수색도 적극적이지 않아 피해자들의 공포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심지어 채팅방에 사진을 전송했는데 이를 받은 사람들에게 ‘삭제했다, 더 유포하지 않겠다’는 각서만 받고 삭제여부는 조사하지도 않은 일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미 처벌받은 가해자가 같은 사진이나 영상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어도 처벌할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당국이 단속의 손을 놓은 사이 피해자들은 몰카 영상, 사진을 직접 지우느라 수백만원의 사비를 털기도 한다. 소위 디지털 장의사를 고용해 매달 50만~300만원을 주고 끊임없이 복제되고 튀어나오는 사진과 영상을 하염없이 지워나간다. 6개월만 이용해도 이용료가 1,000만원을 넘어간다. 몰카 촬영물 유통을 감시하는 디지털성폭력아웃의 하예나 대표는 “사진이나 영상이 딱 한 두 군데 사이트에만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이트에 퍼져 있어 지워도 지워도 끝이 없다”며 “피해자들은 매달 300만원의 계약기간이 끝나가는 게 무섭다는 말을 많이 하고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된 노동에 뛰어든다”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가해자는 미약한 벌금을 물고 형을 다하는 반면 정작 피해자는 수백만원의 경제적 피해와 끝없는 불안,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모순이 계속되고 있다”며 “기술 발전으로 몰카 범죄가 늘고 다양해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피해자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과 영상 몰수를 철저하게 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따로 온라인 성폭력 대응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아 변호사는 “방송심의위원회에 신고하더라도 관련 영상이 삭제되기까지 최소 2~3주, 길게는 한 달이 걸려 피해자들이 사설업체를 이용하는데, 해외에서는 유포사이트 운영업체와 삭제업체가 같은 소유주라 문제가 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며 “정부가 온라인 성폭력 대응센터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피해자 지원, 사진 및 영상삭제 등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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