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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심층기획] 김이수 인준 ‘표류’… 누적 미제사건 864건 ‘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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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동의안 야권 반대로 차일피일/朴탄핵심판 이후 청구 사건도 쇄도/올 접수 건수 첫 2000건 돌파 전망/재판관도 1명 부족 ‘8인 체제’ 운영/접수사건 180일내 결정 원칙 못지켜/병역거부권 헌소 등 줄줄이 계류중

지난 1월31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임기만료로 물러나며 생긴 헌재소장 공백이 오는 31일이면 꼭 6개월을 채운다. 2006년 4대 전효숙 소장 후보자 낙마 때의 1차 공백(128일), 2013년 5대 이동흡 소장 후보자 낙마로 생긴 2차 공백(80일)보다 훨씬 장기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6대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야권의 반대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실정이다. 헌법학계와 법조계에선 ‘헌재소장은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 헌법 조문을 들어 “사실상 국회가 위헌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한다.

세계일보

◆탄핵심판 후 관심 폭증… 미제사건 급증

24일 헌재에 따르면 현재 소장만 공석인 게 아니다. 헌재는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3명씩 지명 또는 선출한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다. 2012년 국회 선출로 임명된 김이수 재판관이 대통령 몫의 헌재소장 후보자로 신분이 바뀌면서 국회 몫 재판관 1석이 비게 됐다.

하지만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가 지지부진하자 신임 재판관 1명을 추가로 뽑는 문제는 아예 국회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헌재는 지난 3월29일 이후 벌써 4개월 가까이 재판관 1명이 부족한 ‘8인체제’로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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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8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야당 의원들의 거듭된 공세에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눈가를 만지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헌재는 미제사건이 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접수한 사건은 180일 안에 결정을 선고해야 하는데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당시 710건이던 누적 미제사건은 올 6월 현재 864건으로 154건 늘었다. 지난해 12월9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접수 후 약 3개월간 헌재는 다른 사건은 제쳐놓고 탄핵사건 심리에 매달려야 했다. 그 결과 올 3월에는 누적 미제사건이 900건 가까이에 이르렀다.

더욱이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헌재 위상이 올라가고 헌법재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치솟으며 ‘헌재가 나서 결론을 내려 달라’고 청구하는 사건이 쇄도하고 있다. 올해 들어 6월까지 헌재가 접수한 사건은 총 1350건으로, 1988년 헌재 창설 후 상반기 접수 건수로는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이런 추이대로라면 올해 헌재는 사상 처음 2000건 넘는 사건을 접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는 2014년 접수한 1969건이 최다 기록이다.

헌법학계와 법조계는 “진짜 문제는 미제사건의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지적한다. 헌재가 신속히 결론을 내려야 하는 중대사안인데도 재판관이 정원에 미달해 결정을 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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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사건은 소장 없이는 결론 못 내려”

헌법에 따라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하려면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재판관이 8명뿐인 현 상황에서 의견이 7대1이나 6대2로 갈리는 사안은 결정을 선고해도 별 무리가 없다. 그러나 5대3 또는 4대4의 첨예한 사안은 반드시 재판관 9명이 다 채워진 뒤 결론을 내려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종교나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 처벌을 둘러싼 논란이다. 헌재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은 위헌”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을 2015년부터 3년째 심리 중이다. 선고가 늦어지다 보니 하급심은 무죄를, 대법원은 다시 유죄를 선고하는 혼선이 빈발하고 있다.

종교적 병역거부자 변론을 맡은 한 변호사는 대놓고 “헌재 심사가 진행 중인 만큼 법원은 병역거부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하지 말고 헌재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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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등 재판관들이 지난 4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성충동약물치료 처분 위헌확인 사건 등을 선고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그뿐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가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해경 비판을 자제하라”고 요구한 것이 언론자유 침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 2015년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 2016년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가 입주업체들의 재산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 등 굵직한 사건들이 줄줄이 계류돼 있다. 사안의 성격상 소장 등 재판관 9명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들이다.

헌재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헌재소장 공석 사태가 길어질수록 재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국회는 이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공석 사태를 조속히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도 “헌재소장 후보자가 전문성이나 청렴성에 큰 문제가 없다면 (국회는) 임명에 동의해야 한다”며 “헌재의 파행적 운영은 국회 책임이 크다”고 밝혔다.

김건호·김태훈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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