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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검찰, 원세훈 전 국정원장 총선·지방선거 공천 개입 정황 녹취록 증거 제출…파기환송심서 징역 4년 구형, 선고는 내달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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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8대 대선 개입 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6)이 이명박 정부 당시 총선과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 개입하라고 국정원에 지시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다. 언론 보도에 선제적으로 개입하고 국민에 대한 심리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 형성을 위해 국정원이 총체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시한 내용도 들어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구형했다. 2015년 7월 대법원이 일부 증거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원 전 원장이 징역 3년을 받은 원심을 파기환송해 이뤄지는 이번 재판에 새로운 증거가 변수가 될 지 주목된다. 법원은 다음달 30일 선고를 하기로 했다.

24일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대웅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국정원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을 재판부에 새로 증거로 제출했다. 원 전 원장이 자신이 주재한 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을 담은 문건으로, 앞서 재판부에 제출한 문건은 국정원에 의해 주요 부분이 지워진 상태였다. 검찰은 최근 국정원으로부터 지워진 부분을 복구한 문건을 제출 받아 이를 새로 제출했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복구된 내용 중 원 전 원장이 2012년 4월 총선과 2010년 6월 지방선거의 공천 과정에 개입하라고 지시한 정황을 공개했다. 2011년 11월18일 회의 녹취록을 보면, 원 전 원장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2월부터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다”며 “지부장들은 현장에서 교통정리 잘 될 수 있도록 잘 챙겨보라”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은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1년 앞두고도 ‘후보 관리’에 나섰다. 2009년 6월9일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은 “1995년 선거 때도 구청장은 본인들이 원해 민자당 후보로 나간 사람은 없고, 국정원에서 나가라 해서 나간 것”이라며 “우리 (국정원) 지부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후보들을 지금부터 잘 검증해 어떤 사람이 도움이 되겠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국정원 지부장들로 하여금 현장에서 보수단체 인물들이 적절히 공천되게 하고 사람을 추천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 전 원장이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보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여론 형성에 개입하라고 주문한 내용도 드러났다. 2011년 11월18일 회의 녹취록에는 “일이 벌어진 다음 대처하지 말고, 지금부터 모든 신문 등에 (칼럼과 사설 등을) 준비해 놓았다가 아침 신문에 실리도록 하는 치밀함이 있어야 한다”는 지시 내용이 담겨 있다. 2009년 12월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은 “기사가 난 다음 보도를 차단시키겠다는 건 무슨 소리냐”며 “기사 나는 걸 미리 알고 못나가게 하든지 아니면 기사 잘못 쓴 보도 매체를 없애버리는 공작을 하는 게 여러분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국정운영 등에 대한 언론 보도나 여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작 정치를 지시한 게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2012년 총선 직후 열린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은 “원에서도 하지만 지부에서도 심리전 12국에서 다 연결해서 하고 있냐”고 되물으며 “심리전이란 게 대북 심리전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에 대한 심리전”이라고 부서장들에게 강조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해당 문건을 증거로 채택했다.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이 “기존 녹취록과 다른 내용이 많은데 검찰의 의도적 편집 결과로 보여 자료의 신빙성 의심된다”며 증거 채택에 반발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국가안보 기능에 한정한 국정원법의 원칙과 한계를 넘어 국정원장의 지위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정치에 관여하고 선거에 개입했다”며 원 전 원장에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의 행위를 “정치와 선거에 관한 여론을 인위로 조성하는 등의 반헌법적인 행태”로 규정하며 “소중한 안보자원이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 사유화되면서 안보역량의 저해가 초래됐다”고 구형 사유를 설명했다.

원 전 원장은 최후진술을 통해 “저는 정치 중립과 선거 중립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며 “심리전단 직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행위였다면 바로 중단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했던 여러가지 일들은 국가안보와 국익에 도움이 됐다고 자부한다. 재판부께서 잘 판단하셔서 자유의 몸이 되어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이날 결심공판을 끝으로 4년 동안 끌어온 원 전 원장의 공판이 마무리됐다. 2013년 6월 검찰이 국정원법 위반·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원 전 원장을 기소했지만, 2014년 9월 1심은 원 전 원장의 선거개입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2015년 2월 2심은 선거개입 혐의를 유죄로 보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해 법정구속시켰다. 상황이 반전되는 듯 했으나 2015년 7월 대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핵심 증거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아 사건을 파기해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년여 간 진행된 파기환송심에서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 혐의가 인정될 지를 두고 관심이 쏠린다. 검찰은 ‘국정원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 등을 바탕으로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 혐의를 증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정원이 ‘2012년 대선을 대비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장악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SNS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문건 등 16건도 증거로 채택된 상태다.

원 전 원장 변호인 측은 “국정원 전 부서장들이 생각도 다르고 지역도 다른데 원 전 원장이 회의에서 선거개입을 지시했다고 상상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선거 불개입 원칙을 수시로 강조한 점을 고려할 때 선거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없었음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또 “무리한 기소로 전부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며 유죄로 인정된 정치개입 혐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다음달 30일 원 전 원장의 선고공판을 연다고 밝혔다. 통상 검찰의 구형이 있은 뒤 2~3주 안에 선고기일을 잡지만, 재판부는 한달여의 시간을 두고 각종 법리와 증거를 세세하게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검찰이 새로 제출한 증거들이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을 입증할 증거로 작용할지 재판부의 판단이 주목된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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