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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세월호 유족 우는 장면 빼라, 박대통령 얼굴 조금만 써라”···MBC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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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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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의료’ 관련 방송에)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 사진을 많이 쓰지 마라.” “(세월호) 유가족이 우는 장면은 삭제하라.”

MBC <PD수첩> 제작을 맡은 일선 PD 10명이 24일 오전 서울 상암동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 다룬 아이템을 묵살당한 뒤 제작거부에 나선 이 PD들은 2013년 이후로 숱하게 제작 자율성을 침해받아왔다며, 회사 측의 부당한 간섭이 벌어진 실태들을 공개했다. PD들은 아이템 발제가 비합리적 이유로 묵살된 데 대해 반발하며 지난 21일부터 제작거부에 돌입한 상태다. 25일 저녁 <PD수첩>은 결방한다.

PD들이 기자회견에서 직접 밝힌 ‘부끄러운 사례들’은 한 두 건이 아니었다. 기자회견문의 내용을 소개한다.

■ <PD수첩> PD들의 기자회견문

201. 길었던 2012년의 170일 파업이 끝난 이후 저희 PD수첩 제작진들이 오늘까지 만든 방송의 숫자입니다. 무려 5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들이 유난히도 많았던 그 5년 동안 저희 PD수첩은 사안의 핵심을 파고드는 취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201번의 방송을 했습니다. 파업 전후로 회사는 PD수첩 PD 절반 이상을 해고하거나 징계하고 타부서로 발령 낸 후, 그 빈자리를 파업 중에 뽑은 대체인력들로 채웠습니다. 그들이 회사의 입맛에 맞는 PD수첩 방송을 만드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고통이었습니다. 가까스로 제작 현장에 남은 저희들은 ‘해야 하는 아이템은 못하더라도, 해서는 안 될 아이템이 방송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회사의 징계와 부당인사 앞에 무력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PD수첩이 최악의 방송을 하지는 못하게 버티자며 견딘 지난 5년입니다.

그러나 결국 오늘 저희 PD수첩 제작진들은 202번째의 방송 제작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 제작진은 8월 1일 방송을 위해 ‘한상균을 향한 두 개의 시선’이라는 제목의 기획안을 제출했습니다. 최근 대법원에서 실형 확정 판결을 받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이야기를 고리로 삼아,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를 취재하려던 기획입니다.

조창호 시사제작국장과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은 이 아이템에 대한 취재를 막았습니다. “방송은 당해 사업자 또는 그 종사자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되는 사안에 대하여 일방의 주장을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를 오도하여서는 아니된다”라는 방송심의규정을 근거로,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PD들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되기 때문에 취재를 불허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회사 측 주장대로라면, 사실상 대한민국의 노조가 있는 모든 방송과 신문사는 노동문제에 관한 취재를 해선 안 될 겁니다.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 더 많은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방송사가 PD의 취재를 막기 위해 동원한 논리의 수준이, 참담합니다.

다시 PD수첩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제는 방송의 진짜 주인인 국민들께 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PD수첩 제작진

강효임, 김현기, 서정문, 소형준, 이영백, 전준영, 조윤미, 조진영, 최원준, 황순규

<PD수첩 제작진의 요구>

1. PD들이 양심과 상식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자율성을 보장하라.

2. 공정방송을 훼손하고 이번 제작 중단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조창호 시사제작국장과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은 사퇴하라.

■<PD수첩> 제작 자율성 침해의 대표적인 사례



▶2013년 3월 <진주의료원 폐업> 관련 아이템-“노인네들 병원에서 나가는 방송 해봤자 시청률 안 나와”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는 2013년 초, 진주의료원에 대한 폐업을 결정했다. 폐업으로 인해 당장 치료를 중단해야 했던 저소득 환자들이 문제였다. 해당 아이템을 취재하겠다고 기획안을 제출했으나 당시 시사제작국장은 “지방에 있는 병원 하나가 문 닫는 일에 누가 관심이 있겠냐? 노인네들이 병원에서 나가는 방송 해봤자 시청률 안 나온다”며 아이템을 불허했다. 이에 문제 제기를 했던 담당PD중 한명은 제작과 상관없는 DMB송출실로, 다른PD는 심의실로 인사 발령이 났다.

▶2014년 4월 <세월호>-“유가족 우는 장면을 삭제하라”

세월호 침몰 6일째가 되던 2014년 4월 22일, 세월호 방송을 몇 시간 앞두고 최종 편집에 몰두하던 당시 제작진에게 이해할 수 없는 지시가 내려왔다. “유가족이 우는 장면을 최대한 삭제하라”는 지시였다. 제작진은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이 우는 걸 빼라면 어떡합니까?”라며 저항했지만 팀장 지시 이후 몇 장면이 삭제되었다. 일종의 보도지침, 그리고 그에 대한 제작진의 저항 이후 3년간 시사제작국장들은 세월호를 다루겠다는 PD들의 기획을 모두 막아섰다.

▶2014년 10월 14일 <구멍난 해외자원개발, 사라진 나랏돈 2조원> -이명박 전 대통령 비판 방송 후, 담당PD를 스케이트장으로

<구멍난 해외자원개발> 방송은 이명박 정부 당시 한국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사 부실 인수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방송이었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담당PD 중 한 명은 신사업개발센터로 발령이 났으며 그곳에서 2년 반 동안 스케이트장 홍보 및 관리 업무를 맡았다. 이 PD는 2년간의 법정싸움 끝에 대법원의 전보무효 판결을 받고 2017년 4월에야 복귀했다. 또 다른 PD는 당시 인사평가가 포함된 기간에 ‘창사기념 프로그램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인사고과에서는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이후 하위 점수를 받은 사원들과 함께 몇 주간에 걸쳐 사내 교육을 받았다.

▶2015년 7월 <국정원의 민간인 해킹 의혹> -금기어가 된 ‘국정원’

국정원이 이탈리아의 인터넷 감시프로그램 제작 업체인 ‘해킹팀’에게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건이 있었다. 천안함 폭침에 의문을 제기한 학자, 삼성 갤럭시 신제품과 안랩V3 등을 해킹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국정원이 대북용이 아닌 민간인을 사찰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정국을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해당 아이템은 특별한 이유 없이 불허됐다. 국정원을 다루는 것은 팀의 안위를 위해 좋을 것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2015년 11월 <교과서 국정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불허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갈등, 쟁점은 무엇인지 아이템을 기획했으나, 특별한 이유 없이 불허되었다. 해당 아이템을 냈던 담당PD는 발령받은 지 두 달이 안 되었지만 곧 다른 프로그램으로 발령받아 나갔다.

▶2015년 12월 8일 <세금체납, 안내는 것인가 못내는 것인가>

국장은 고액 세금 탈루 인사인 신동아 최순영 전 회장 취재 부분을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법인세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 학계의 의견을 반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피디의 성향을 알겠다”며 피디를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발언을 하였다.

▶2015년 12월 <백남기 농민 관련 취재> -“백분토론에서 방송 하니 PD수첩에서 할 필요 없다”

아이템을 발제했을 때, 같은 시사제작국 프로그램인 “백분토론에서 민중총궐기 당시의 이슈들을 점검할 예정이니 굳이 PD수첩에서 다룰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당시 백분토론 제목은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대한 내용이 아닌 ‘복면시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였다.

▶2016년 1월 <두산 명예퇴직 관련 취재> - “일개 회사의 구조조정에 아무도 관심 없어”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전 직원의 20%에 달하는 직원을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감축했다. 당시 PD들은 오너의 무리한 인수합병 부작용으로 발생한 회사의 위기를 사원들에게 떠넘기는 대기업의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 해당 아이템을 발제하고 사전 취재에 나섰다. 희망퇴직 대상자와 대기발령 대상자가 된 직원들을 어렵게 설득해 섭외에 성공하고 기획안을 제출했으나 당시 국장은 아이템을 불허했다. 이유를 묻자 “2주 후 쯤 되면 일개 회사의 구조조정에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 “기업 경영이 어려우면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경영진 일방의 발언도 서슴없이 나왔다. 양측의 입장을 공평하게 담겠다는 피디들의 설득에도 아이템은 끝내 거부되었고, 사건사고 아이템인 ‘데이트 폭력’ 기획안으로 교체되었다.

▶2016년 2월 16일 <캄보디아 우물의 비밀> 방송, 일부 내용 삭제 요구

당시 국장은 코이카 관련 취재 부분을 본인의 명령이라며 전부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그 내용이 삭제되면 방송 분량이 부족해진다는 제작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결국 4분가량이 삭제됐다. 당시 코이카는 대전MBC(사장 이진숙)와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2016년 5월 <4대강 녹조> 관련 아이템 불허 - “내가 아는 기상학자에게 물어보니 올해는 비가 많아 녹조가 줄어들 것”

다가올 여름에 4대강 녹조현상이 심각해질 것을 우려하는 시각과 장마 때의 홍수조절 효과의 유효성 등을 점검하기 위한 아이템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국장은 “본인이 잘 아는 기상학자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올해는 비가 많이 올 예정으로 녹조현상도 줄어들 것”이라며 해당 아이템 진행을 막았다.

▶2016년 7월 - 8.15특집 준비하던 PD에게 “뉴라이트 계열의 자유주의 학자들과 인터뷰하라”

8.15 특집아이템을 준비하던 팀에게 국장은 이례적으로 기획안까지 직접 써서 PD에게 건넸는데 제목은 ‘3.1운동과 대한민국 탄생’이었다. 3.1운동이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역할을 했다는 내용으로 방송을 만들 것을 주문했으며, 친일 논란이 있는 인물들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우려가 있었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기획안에 적힌 인터뷰해야 할 전문가 목록이었다. 이승만을 재평가하자는 자유주의 사학자(이주영), 국정교과서 집필진(김명섭),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역사학자(김용직), 막말 논란을 일으킨 역사학자(유영익) 등이었다.

▶2016년 12월 20일 <국정농단의 숨은 배후, 김기춘과 우병우>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이 하나둘씩 밝혀지던 시기,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김기춘, 우병우에게 관심이 모아졌다. 김기춘의 경우 대표적인 공안검사 출신으로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국장은 방송 전체 내용에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김기춘의 간첩조작사건 부분을 대폭 축소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간첩으로 몰려 수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피해자들의 고통스런 증언들이 있었으나 상당 부분 삭제되어 방송되었다.

▶2017년 1월 10일 <최초증언! ‘김영재 실’의 비밀> -“박대통령 얼굴 많이 쓰지 말라”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의료 시술에 대해 주요 정황을 포착해 방송했다. 해당 방송을 준비할 당시 방송에 박 대통령 얼굴 사진을 많이 쓰지 말 것을 요구했다.

▶2017년 2월 <위안부와 소녀상> -위안부 아이템 두 번 연속 불허

2015년 12월 한일위안부협정 당시 아이템을 기획했으나 국장은 별다른 이유 없이 불허됐다. 2017년 2월, 부산동구청 소녀상 철거사건을 계기로 위안부 합의 문제를 다시 한 번 기획했으나 국장은 “길게 다룰 아이템이 아니다. 시사매거진 2580에서 하기로 했으니 PD수첩까지 할 필요 없다”며 불허했다.

▶2017년 2월 21일 <탄핵, 불붙은 여론전쟁>

탄핵정국이 한창일 때, 탄핵반대쪽의 일부 참석자들은 금품을 받고 집회에 참석했다. 탄핵반대집회에는 ‘계엄령을 발포하라’라는 과격한 구호가 등장하기도 했으며, 태극기봉으로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찌르거나 구타하는 일도 빈번했다. 이런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자 국장은 내용이 전반적으로 편향되었다며 크게 화를 냈고 “이대로는 방송 불가”라고 말했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탄핵 ‘찬성’ 여론이 시종일관 압도적인 수준으로 높았으나 국장은 찬반입장의 기계적 중립을 요구했다. 기계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내용이 수정되었고, 방송하는 당일 날 아침 두 번째 시사를 받았다.

▶2017년 4월 <세월호, 101분의 기록> -“‘청와대’를 삭제하라”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나서야 세월호를 취재할 수 있게 되었다. <세월호, 101분의 기록> 편이다. 그러나 이 방송을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검열은 이어졌다. 시사제작국장은 ‘국가’와 ‘청와대’라는 말을 삭제하라 지시했다. 시사제작국장은 ‘제작진이나 국민들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 국가 탓만 해서는 안 되고 우리 모두의 문제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세월호 사고 직후 국가안보실과 해경 본청과의 통화 내용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국가안보실이 청와대 소속이 확실하냐’고 물으며 청와대를 뺄 것을 집요하게 강요했다.

▶2017년 7월 11일 <4대강, 22조는 어디로> -“살아있는 권력 좀 물어 뜯어라”

국장은 4대강 사업의 장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부각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박원순 시장과 이낙연 총리의 예를 들며 정치적 논리로 4대강 사업을 방어하려했다. “박원순 시장도 보 철거 안했다, 이낙연 총리도 인정했다”. 국장은 또한 시사 중 “죽은 권력 좀 그만 물어뜯고 살아 있는 권력 좀 물어뜯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해당 방송을 하면서 국장과 언쟁을 벌였던 담당PD는 <4대강> 방송 직후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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