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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자영업의 위기] `갑` 건물주와 프랜차이즈는 희생 없고 `을` 끼리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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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서울 망원동과 이태원 경리단길 일대 상가. 골목 곳곳에 트렌디한 감성의 음식점·카페 등이 들어서자 2곳을 합쳐 '망리단길'이라는 애칭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24일 기자가 방문한 이 일대 상인들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경리단길 일대에서 5년간 양식점을 경영해온 구모씨(57)는 "5년간 임대료가 두배 이상 뛰었다"며 "더 이상 가게 유지하기 힘들어져 내달 중에 문 닫고 일산 쪽으로 가게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구씨는 "작년에 근방에 대기업 아이스크림 브랜드 들어온다는 소문이 난 뒤에도 임대료가 10%이상 씩 뛰고 건물주들이 기존에 상인들과 재계약을 꺼리고 있다"며 "장사는 건물 없이 할 게 못 된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네 자영업자들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것은 비단 '고임금' 뿐만 아니다. 수년간에 피땀 흘려 상권을 일궈놓으면 느닷없이 임대료를 폭탄 인상하고, 건물수리·재건축 등 각종 이유를 들이대며 계약 연장을 거부하는 건물주들 횡포는 자영업자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실제 여신금융협회가 최근 한국갤럽에 의뢰해 500개 영세 가맹점을 설문한 결과 경영애로 사항으로 불가항력적인 '경기침체'(57.2%)외에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임대료'(15.8%)가 꼽혔다.

개발과 대기업 진출, 임대료 상승으로 터줏상인들이 대거 쫓겨난 대표 '젠트리피케이션' 1번지는 서울의 신사동 가로수길.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 모씨42)는 김 씨는 "장사가 잘 되면 좋지만 미래는 항상 걱정투성이"이라고 하소연했다. 장사가 안 되면 창업할 때 들었던 투자금이나 권리금을 손해 보게 되고, 잘되더라도 임차료가 올라 언제 쫓겨날지 불안하다는 것이다. 가로수길 인근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2008~2009년쯤부터 임차료가 계속 큰 폭으로 올랐고 2013~2014년에는 대기업이 건물을 통째로 임대하거나 사들이면서 많게는 서너 배 이상 올랐다"면서 "개인 자영업자들이 매달 1000만원 씩 하는 임차료 감당하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힘들게 새로 자리잡아 상권을 개척해도 '가시방석'이긴 마찬가지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2년간(2015년~17년) '제2의 경리단길'이라 불리며 상인들이 상권을 새로 개척한 성수동 상가 임대료는 각각 1.57%와 4.88%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평균 상승률의 5~6배를 웃도는 상승률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프랜차이즈 가맹 자영업자들은 본사 횡포라는 고질적 갑질에도 신음하고 있다.

이재학 남서울대 교수가 최근 S사에 가맹된 서울 소재 편의점 가맹점주 총 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절반 이상(55.6%)이 가맹점 창업에 대해 "잘못된 선택"이라고 답했다. 편의점 본부의 지원에 대해 만족하는 사항이 없다는 답변도 22%에 달했다.

가맹점주들은 본사에 대해 가장 불만족인 사항으로 '24시간 영업(17.1%) 강요'를 꼽았다. 과도한 로열티(15.8%), 일일매출금 송금(14.5%),과도한 위약금 요구(11.2%), 영업 독점권 미인정(10.5%) 등에도 불만이 많았다.

안양시에서 피자 프랜차이즈 매장을 운영하는 문상철 씨는 "지난 2011년 10년 동안 지속된 본사와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재계약 협상을 진행하던 중 '재계약을 하게 되면 리뉴얼 공사를 해야 한다'는 본사측 요구에 수천만원을 손해봤다"고 말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가맹본사는 가맹사업자 점포환경에 드는 비용을 20% 이내에서 지원토록 돼 있고 점포 확정이나 이전시엔 40%를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문씨는 공사비를 전혀 보상받지 못했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정부가 역대 최대규모 최저임금 인상까지 발표하면서 점주와 종업원간 '을·병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김상훈 스타트비즈니스 대표는 "그나마 인건비는 업주들의 선택에 의해 리스크 조절이 가능하지만 임대료와 본사의 정책은 예상 불가능의 리스크"라며 "정부가 이런 리스크를 줄여주지 않는다면 결국 인건비를 놓고 '을'격인 영세업자와 '병'격인 종업원간에 분쟁이 심해질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강래 기자 / 양연호 기자 / 박재영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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