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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일상적인 제작자율성 침해, 'PD수첩'을 멈추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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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거부 PD들 "양심과 상식에 따라 프로 만들고 싶어" 호소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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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PD수첩' PD들이 제작거부에 나선 배경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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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PD수첩' PD들(11명 중 10명)이 오후 6시부터 제작거부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민중총궐기를 이끌었다는 이유로 현재 옥살이를 하고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아이템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반려됐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내부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2013년부터 간부들의 제작자율성 침해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졌고, PD들은 오랫동안 모욕적인 나날을 견뎌야 했다. 누적돼 온 갈등이 폭발하게 된 계기가 '한상균 아이템'이었을 뿐, '제작거부' 사태는 예고된 일이었다.

2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 'PD수첩' PD들(강효임·김현기·서정문·소형준·이영백·전준영·조윤미·조진영·최원준·황순규)이 왜 제작거부를 하게 됐는지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제작거부'가 아니라 '중단'임을 강조했고, 사측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있을 경우 언제든지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PD수첩'이 온전히 시청자들을 만나길 바라고 있었다.

◇ "우리 사회 노동 문제 다루려 했다… 취재 막는 것은 부당노동행위"

김현기 PD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감옥에 있는 이유를 지지난주에 발제했더니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이 이 아이템을 이해당사자인 노조 조합원 PD들이 다루는 것은 불허한다고 했다. 지난주에 제작진이 팀장과 함께 재고를 요청하며 수정된 기획안을 들고 갔다. 그에 대해서도 재차 불허했다. 이해당사자기 때문에 일방적인 한쪽의 의견을 전해 아이템이 오도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고 밝혔다.

김 PD는 "저희는 노조 조합원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PD로서 본인의 양심에 근거해 사실에 맞게 그 방송을 만들려고 했다. 제작과정을 충분히 논의하고, 팀장 통해 의견을 전달하면, 국장 권한인 시사를 통해 의견을 들어 그걸 바탕으로 수정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 기회를 버리고 발제한 PD가 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아이템은 못 다룬다고 결정한 것"이라며 "국장은 본부장(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의 생각도 자신과 같다며 더 이상의 논의는 필요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PD수첩' 제작진이 낸 기획안 제목은 '한상균을 향한 두 개의 시선'(초안 : '한상균은 왜 감옥에 있는가')이었으나, 결국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였다. 한 위원장의 사례는 급식 노동자 비하발언, 과중한 업무량으로 인한 집배원 자살과 버스기사의 졸음운전 사고, 최저임금 문제 등을 아우르기 위한 하나의 고리였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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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수첩' 김현기 PD가 기자회견 중 발언하는 모습 (사진=이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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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거부에 참여한 10명 PD들이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다. 양심과 상식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자율성을 보장할 것, 공정방송을 훼손하고 이번 제작중단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조창호 시사제작국장과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은 사퇴할 것.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노조원이라는 '직접적 이해당사자'라는 이유로 방송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간부들에게 "똑같은 논리로 MBC는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사용자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다. 회사 주장대로라면 노조가 있는 모든 방송, 신문사는 노동문제 취재를 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노조에 가입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취재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노동문제를 취재하려면 노조를 탈퇴하라는 요구나 다름없다"며 회사의 주장이 '부당노동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저항에 나선 것은 평PD들만이 아니다. 'PD수첩' 팀장이었던 장형원 부장은 이날 오전 게시판에 글을 올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보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우선 장 부장은 보도본부 명의로 나온 7월 11일 성명서와 7월 19일 '뉴스데스크'에서 2008년 미국 쇠고기 협상을 다룬 'PD수첩'을 공격한 것을 들어 "같은 회사 프로그램을 국민을 속이는 방송이라고 비판하고 자해하는 보도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언론사인가"라고 반문했다.

두 번째로는 'PD수첩'을 민주노총의 청부 제작소라고 규정하고, 최근 방송 아이템에 대해 일부 정확성과 공정성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한 7월 21일자 시사제작국 명의 성명을 들었다. 그는 "해당 부서장이 소속 프로그램 존재를 부정하는 성명서를 내는 것이 정상적인 조직인가"라며 "저는 'PD수첩' 팀장이기 전에 한 명의 피디이고 인간이다. 이제부터는 제 양심을 지키고 싶다"고 밝혔다.

송일준 MBC PD협회장은 "오랜 세월 동안 PD들의 제작자율성을 짓밟고 유린하는 행태가 계속돼 왔다. 하지만 'PD수첩'은 유지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아이템 킬, 부당 간섭 등을 인내하고 가급적 대화를 통해 타협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내부 PD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최악의 방송을 막기 위해 엄청난 고민과 노력을 해 왔다. 그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폭발한 것이다. 늦었지만 우리 MBC를 공영방송으로 되살릴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협회장은 "(이번 제작거부는) 노조 차원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듣기는 쉽지만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며 "징계를 각오한 행동이니만큼, 부디 시청자 여러분들이 'PD수첩' PD들의 진정을 이해해주고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고 전했다.

◇ 'PD수첩' PD들이 밝힌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 살펴보니

'PD수첩' PD들은 4일째를 맞는 제작거부의 배경을 밝히면서, 그동안 'PD수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사례를 공개했다. 기자회견에서 전한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만 17건에 달했다. 다음은 'PD수첩' 제작진이 공개한 사례 중 일부다.

MBC 'PD수첩' 제작자율성 침해의 대표적 사례
2014년 4월 <세월호>
- "유가족 우는 장면을 삭제하라"
세월호 침몰 6일째가 되던 2014년 4월 22일, 세월호 방송을 몇 시간 앞두고 최종 편집에 몰두하던 당시 제작진에게 이해할 수 없는 지시가 내려왔다. "유가족이 우는 장면을 최대한 삭제하라"는 지시였다. 제작진은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이 우는 걸 빼라면 어떡합니까?"라며 저항했지만 팀장 지시 이후 몇 장면이 삭제되었다. 일종의 보도지침, 그리고 그에 대한 제작진의 저항 이후 3년간 시사제작국장들은 세월호를 다루겠다는 PD들의 기획을 모두 막아섰다.

2014년 10월 14일 <구멍난 해외자원개발, 사라진 나랏돈 2조원>
- 이명박 전 대통령 비판 방송 후, 담당PD를 스케이트장으로
<구멍난 해외자원개발> 방송은 이명박 정부 당시 한국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사 부실 인수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방송이었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담당PD들에 대한 부당한 조치들이 있었다. 당시 담당PD 중 한 명은 신사업개발센터로 발령이 났으며 그곳에서 2년 반 동안 스케이트장 홍보 및 관리 업무를 맡았다. 이 PD는 2년간의 법정싸움 끝에 대법원의 전보무효 판결을 받고 2017년 4월에야 복귀했다. 해당 방송을 함께 연출했던 또 다른 PD는 당시 인사평가가 포함된 기간에 '창사기념 프로그램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인사고과에서는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이후 하위 점수를 받은 사원들과 함께 몇 주간에 걸쳐 사내 교육을 받았다.

2015년 7월 <국정원의 민간인 해킹 의혹>
- 금기어가 된 '국정원'
국정원이 이탈리아의 인터넷 감시프로그램 제작 업체인 '해킹팀'에게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건이 있었다. 천안함 폭침에 의문을 제기한 학자, 삼성 갤럭시 신제품과 안랩V3 등을 해킹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국정원이 대북용이 아닌 민간인을 사찰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정국을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해당 아이템은 특별한 이유 없이 불허됐다. 국정원을 다루는 것은 팀의 안위를 위해 좋을 것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2015년 12월 <백남기 농민 관련 취재>
- "백분토론에서 방송 하니 PD수첩에서 할 필요 없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사용한 물대포를 맞고 뇌출혈로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이템을 발제했을 때, 같은 시사제작국 프로그램인 "백분토론에서 민중총궐기 당시의 이슈들을 점검할 예정이니 굳이 PD수첩에서 다룰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당시 백분토론 제목은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대한 내용이 아닌 '복면시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였다.

2016년 5월 <4대강 녹조>
"내가 아는 기상학자에게 물어보니 올해는 비가 많아 녹조가 줄어들 것"
다가올 여름에 4대강 녹조현상이 심각해질 것을 우려하는 시각과 장마 때의 홍수조절 효과의 유효성 등을 점검하기 위한 아이템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국장은 “본인이 잘 아는 기상학자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올해는 비가 많이 올 예정으로 녹조현상도 줄어들 것”이라며 해당 아이템 진행을 막았다.

2016년 12월 20일 <국정농단의 숨은 배후, 김기춘과 우병우>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이 하나둘씩 밝혀지던 시기,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김기춘, 우병우에게 관심이 모아졌다. 김기춘의 경우 대표적인 공안검사 출신으로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국장은 방송 전체 내용에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김기춘의 간첩조작사건 부분을 대폭 축소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간첩으로 몰려 수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피해자들의 고통스런 증언들이 있었으나 상당 부분 삭제되어 방송되었다.

2017년 1월 10일 <최초증언! '김영재 실'의 비밀>
- "박 대통령 얼굴 많이 쓰지 말라"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의료 시술에 대해 주요 정황을 포착해 방송했다. 해당 방송을 준비할 당시 방송에 박 대통령 얼굴 사진을 많이 쓰지 말 것을 요구했다.

2017년 7월 11일 <4대강, 22조는 어디로>
- "살아있는 권력 좀 물어 뜯어라"
국장은 사대강 사업의 장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부각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박원순 시장과 이낙연 총리의 예를 들며 정치적 논리로 4대강 사업을 방어하려 했다. "박원순 시장도 보 철거 안했다, 이낙연 총리도 인정했다". 국장은 또한 시사 중 "죽은 권력 좀 그만 물어뜯고 살아 있는 권력 좀 물어뜯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해당 방송을 하면서 국장과 언쟁을 벌였던 담당PD는 <4대강> 방송 직후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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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자 MBC 편성표. 평소 'PD수첩'이 방송되던 화요일 오후 11시 10분에 '100분 토론'이 편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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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MBC 시사제작국은 24일 오후 입장을 내어 "현 경영진이 출범한 3월 이후로 시사제작국은 공정성과 객관성 있게 아이템을 다룬다는 담보 장치가 기획안에 반영된 경우, 단 한번도 PD들이 사전 발제한 기획안을 거부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시사제작국은 "프로그램 관리자와 제작진 사이의 자연스런 긴장 관계와 의견 조율을 일부 PD들은 마치 '제작진의 자율성 침해' 또는 '연출권 침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는 MBC 저널리즘이 법적 책임과 저널리즘 윤리에 입각한 '법인의 저널리즘'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PD 일개인의 저널리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제작거부에 따른 결방사태 등 관련 책임은 전적으로 해당 제작진에게 있으며 엄격한 사규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한편, 'PD수첩'은 당장 내일(25일)부터 정상적인 방송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취재·제작·편집을 할 인력 대부분이 제작거부 중이기 때문이다. 24일 오후 3시 20분 현재 'PD수첩'이 방송되는 화요일 오후 11시 10분에는 'MBC 100분 토론-한미 FTA, 어디로?'가 편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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