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해역서 중국어선들 오징어 싹쓸이
울릉도 오징어잡이 어민들 "아예 바다 안 나가"
긴급피난 온 중국어선들 어구 훔쳐가기도
어민들 "실효성 있는 대책 필요"
울릉도 저동항에 오징어잡이 배가 정박해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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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릉군 저동리 어촌계장 박일래(64)씨는 24일 오후 항구에 묶어둔 배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오징어 잡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박씨는 이날도 출어를 포기했다. 며칠간 북한 해역에 800여 척의 중국 어선이 몰려와 오징어잡이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박씨는 “위(북한 해역)에서(중국어선들이) 오징어를 다 잡아 버리면 경북 동해안에는 씨가 마른다”며 “울릉도 주민들은 오징어가 잡히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오징어는 6~12월 주로 잡히는 울릉도의 대표 특산물이다. 이맘때쯤이면 울릉도의 해변가·집 담장·철조망 등은 햇볕에 건조되는 오징어가 빼곡히 널려 진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이곳은 어민들의 한숨만이 자리잡았다.
지구 온난화로 난류가 북상하면서 어장 자체가 북한 해역으로 올라갔고, 중국어선이 7∼9월 북한 동해 수역에서 남하하는 오징어떼를 따라 내려오면서 오징어를 싹쓸이하는 탓이다.
경북 울릉도 도동항에서 한 어민이 말라가는 오징어를 손질하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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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자유한국당 박명재(포항남ㆍ울릉) 의원에 따르면 2012년 7만4000여t이던 경북 오징어 어획량은 지난해 4만4000t으로 40% 감소했다. 덩달아 어민들의 수입도 급감했다.
울릉수협 판매과 관계자는 "지난해 오징어 판매액은 60억원 정도"라며 “2000년대 조업이 한창 잘 될 때는 한 해 판매액이 200억원을 웃돌던 시절도 있었다"고 말했다.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울릉도에서 오징어를 활복하고 씻고, 건조하는 모습도 이제 찾아보기가 힘들다.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받으면서, 울릉도를 떠나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오징어뿐만 아니라 대게 등 동해안 자체의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배를 타고 뭍으로 나가 다른 어종을 잡기도 힘든 실정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경북 연근해 어획량은 2000년 14만3000t에서 2015년 12만6000t, 지난해 12만t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울릉군청 관계자는 “어민 대부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라며 “울릉도 경제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열린 울릉도 오징어 축제에서 오징어 배따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울릉군] |
당장 다가오는 축제도 걱정이다. 오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3일간 울릉도 울릉읍 저동항에서는 ‘제17회 울릉도 오징어 축제’가 열린다. 축제 주최 측은 “시식의 경우 냉동오징어로 대체하면 되지만, 맨손잡이 체험은 활어가 필요해 2~3일 전부터 조업을 나갈 예정”이라며 “날씨가 좋으면 그래도 좀 잡을 수 있을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기상 악화로 울릉도 인근 해상에 중국 어선 170여 척이 이틀째 피항해 있다. 중국 어선들은 북한 동해 수역에서 조업하다 이곳으로 피항했다. 울릉군 관계자는 "국제법상 피항하는 선박을 막을 수는 없지만 중국 어선의 피항으로 해상 시설물 등이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울릉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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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에 따르면 지난해 울릉도에 온 중국어선은 821척으로 2015년 516척 대비 59% 증가했다.
울릉군에 따르면 북한 해역에서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은 기상악화로 긴급 피난할 경우 북한이 아닌 울릉도로 온다. 북한에서는 피항시 어획물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철환 울릉군 해양수산 과장은 "중국어선이 주민들이 쳐놓은 통발 등 어구를 훔쳐 달아나거나 해양경찰 몰래 불법조업을 하는데도, 어민들에게 피해액 지원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남북협력기금법에 어민들의 피해액을 보전할 수 있는 조항을 마련하거나 경북도가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북도청 해양수산과 관계자는 "(중국 어선을)꾸준히 단속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보조금 지원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울릉=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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