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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1000년 물결 버텨온 진천 ‘농다리’, 이번 집중호우로 일부 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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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농다리 일부가 유실된 모습(왼쪽)과 유실되기 전 최근 모습[사진 연합뉴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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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에 놓인 뒤 1000년의 세월을 꿋꿋이 버텨온 돌다리가 있다.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굴티마을 앞 세금천에 가면 지네가 물을 건너는 형상의 다리를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돌무더기를 쌓은 징검다리에 길쭉한 덮개돌을 얹은 모습이다. 투박하게 보이는 이 다리는 예부터 굴티마을 사람들은 이 돌다리를 ‘농교(籠橋)’ 또는 ‘농다리’라 부른다.

농다리가 이번 폭우로 상판과 교각이 유실됐다. 24일 진천군에 따르면 28개의 교각 가운데 22번, 25번, 26번 교각 일부가 유실됐다. 22번칸(교각과 교각 사이) 상판 1개도 물에 떠내려갔다. 군은 상판과 교각이 유실됨에 따라 돌다리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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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내린 집중호우로 '1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국내 최고(最古)의 돌다리인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농다리' 상판과 교각 일부가 유실됐다. [진천군청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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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는 1976년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됐다. 93.6m 길이에 높이는 1.2m 정도다. 교각 너비는 3.6m 안팎이다. 다리는 모두 28칸으로 만들어졌다. 모든 돌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한다. 다리 축조 시기는 고려 초로 추정된다.

유선순(50) 농다리전시관 해설사는 폭우 전인 지난 1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농다리 교각은 유선형으로 설계돼 돌을 겹겹이 쌓아 올린 형태를 갖고 있다”며 “강물 흐름에 영향을 덜 받도록 한 것인데 교각 돌틈 사이사이로 물이 흘러나가도록 설계돼 마찰력을 더 감소시킨다. 이는 소쿠리 구멍 사이로 물이 빠지는 원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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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상판과 교각이 유실되기 전인 농다리를 건너고 있는 주민. [사진 진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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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해설사의 말처럼 농다리는 ‘대나무로 짠 바구니(대바구니·籠)’처럼 돌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작은 돌과 큰 돌, 넓적한 돌과 가는 돌이 바구니의 날실과 씨실처럼 잡고 있었다.

1932년 발간된 『상산지』에는 “농교는 세금천과 가리천이 합류하는 굴치(屈峙)에 있는 다리이며 고려초 임씨의 선조인 임 장군이 처음 건축한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언급한 임 장군은 고려 2대 왕인 혜종(943∼945년) 때 병부령을 지낸 진천지역 호족인 임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굴치는 굴티마을의 옛 이름이다.

임영은(55) 농다리지킴이 회장도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장마 때 상판과 교각 1~2개가 유실돼 복구한 적은 있지만 전체가 휩쓸려 나가거나 무너진 적은 없다. 농다리가 올해 장마도 무사히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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