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700m 고원지대의 고산습지
도로·배수로 공사에 물길 막히자
환경부, 2013년부터 생태복원 나서
수로 메우고 습지쪽으로 물길 돌려
지표종인 진퍼리새 군락 다시 형성
지하수위, 지표밑 12㎝까지 차올라
경남 밀양 재약산 사자평 습지보호구역 전망데크 앞쪽에 펼쳐진 참억새 군락. 환경부는 2015년 완료된 생태복원사업을 통해 이곳에 지속적으로 물이 공급되게 하면서 아래쪽부터 다시 습지로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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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형 습지는 대개 산지 사면의 땅속으로 흘러내린 지중수가 솟아나거나 죽은 식물이 분해되지 않고 쌓여 형성된 이탄층이 스펀지처럼 연중 빗물을 머금고 있는 곳이다. 그 결과 주변과는 다른 독특한 생태계가 만들어져 생물다양성을 높여주는 구실을 한다.
산지형 습지는 특히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물이 줄거나 주변에서 흘러든 토사가 쌓이기 시작하는 등 조금만 빈틈이 보이면 오리나무와 같이 물기 많은 곳에 잘 자라는 나무가 침입할 수 있다. 일단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그 주변부터 유기물과 토사의 퇴적이 빨라져 육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마른땅으로 변하는 육화는 습지의 생명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경남 밀양에 있는 사자평 습지는 2006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이미 이런 변화 속에 놓여 있었다.
군 작전도로를 따라 이어진 침식 지역이 2003년 태풍 매미가 몰고 온 집중호우 때 작은 골짜기 규모로 확대된 모습. 환경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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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약산 동남쪽 사면 해발 720~760m 고원지역에 펼쳐져 있는 사자평 습지보호지역은 58만㎡로 산지습지 보호지역 가운데 강원도 인제 대암산 용늪 다음으로 넓다. 2015년 국립습지센터의 정밀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곳에는 보호지역의 10%가량을 점하는 습지식생 지역을 중심으로 진퍼리새와 골풀 등 습생식물 63종을 포함한 271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은줄팔랑나비를 비롯한 130종의 육상곤충, 꼬리치레도롱뇽 등 15종의 양서파충류, 삵과 담비 등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12종의 포유류도 이곳에 서식한다.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산지습지와 마찬가지로 사자평 습지의 변화도 사람이 낸 길에서 시작됐다. 2006년 습지보호지역 지정 당시 보호지역 서쪽 경계는 1960년대 개설된 군작전도로를 따라 집중호우 때마다 침식이 진행돼 작은 골짜기가 만들어진 상태였다. 여기에 추가 침식을 막겠다고 환경부가 도로를 따라 배수로를 만든 것이 실수였다. 창원대 산학협력단이 2012년 낙동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한 ‘재약산 사자평 고산습지 보전·이용 및 복원계획 최종보고서’는 “재약산 남동사면을 가로지르는 인공수로가 조성됨으로써 사면에 함양된 대부분의 지중수가 (습지로 흘러드는) 도중에 차단되어 인공수로로 신속하게 빠져나가게 됐다. 집중된 유출수는 습지 주변의 하상 세굴을 심화시켜 습지 내 지하수면을 저하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복원사업으로 인공 조성한 참억새 군락 사이에 뿌리내린 습지식물 꽃창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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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깨달은 환경부는 2013년부터 사자평 생태복원사업에 나섰다. 2015년까지 이어진 복원사업은 배수로로 차단된 지중수 흐름을 복원해 습지에 더 많은 물이 공급되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인공 수로를 되메우고 습지 쪽으로 관을 깔아 지중수와 빗물이 습지 쪽 땅속으로 서서히 흘러들 수 있게 했다. 한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복원사업은 성공하고 있을까? 지난 20일 돌아본 사자평 습지에서는 몇 가지 의미 있는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사자평 습지보호지역의 핵심 지역은 보호지역 한가운데를 지나는 시전천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습지의 지표종 식물인 진퍼리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반면 시전천까지 이어지는 보호지역 서쪽 절반은 주로 참억새로 덮여 있다. 이미 오래전 육화된 지역에 참억새를 심어 억새밭으로 만든 것이다. 재약산에 많이 자라는 참억새는 습지 식물이 아니다. 동행한 낙동강유역환경청 오기철 전문위원은 “일단 억새를 자라게 해 다른 외래식물이 퍼져나가는 것을 억제하면서 수분을 계속 공급해 자연스럽게 습지식물이 유입되기를 기다리려는 복원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전망데크 옆으로 난 도로 한가운데서는 야생동물의 발자국과 똥 무더기를 더러 만날 수 있었다. 작은 팥알 크기의 것은 고라니나 노루, 좀 큰 것은 삵의 것이었다. 오 전문위원은 “멸종위기종인 삵은 주변에 8마리 이상 서식하고 있고, 담비도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사자평 습지보호지역 전망데크 주변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 삵의 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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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억새밭 사이로 설치된 관찰 데크를 따라 시전천 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길 왼편에 보라색 꽃들이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무더위에 지친 듯 꽃잎을 축 늘어뜨린 식물들은 꽃창포였다. 물을 좋아하는 습지 식물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또다른 습지 식물인 골풀과 진퍼리새도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다. 진퍼리새는 습지의 지표종으로 간주된다. 낙동강유역환경청에 확인해보니 모두 복원사업 과정에 인공 식재한 것이 아니었다. 자연생태연구소 권동운 박사는 “참억새를 복원한 곳에 꽃창포와 진퍼리새 같은 습지 식물이 들어오는 곳은 육화된 환경이 다시 습지화돼 가는 시작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변화는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지전천 동쪽 습지보호지역에서 측정하는 연평균 지하수위 수치에서도 확인됐다. 2013년에 지표에서 땅속 34.9㎝ 아래에 머물던 연평균 지하수위는 2014년엔 지표 아래 25.6㎝, 2015년엔 25.0㎝까지 올라오더니, 지난해에는 지표 아래 11.9㎝ 지점까지 도달했다. 이것이 말라가던 사자평 습지에 물이 되돌아오는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더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대를 갖게 하는 신호임은 분명해 보인다.
밀양/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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