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검찰총장에게 전달해달라고 제3자가 건넨 수임료를 가로챈 혐의(사기)로 기소된 건설업자가 “검사 덕분에 무죄가 나왔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65·사진)과 20년가량 알고 지낸 건설업자 박모씨(57)는 수임료 5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고소돼 2015년 말 재판에 넘겨졌으나 지난해 12월 무죄를 선고받은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박씨를 고소한 사람은 2010년 ‘국새 사기사건’으로 구속됐던 민홍규씨(62)의 부인 김모씨(58)다. 김씨는 “남편이 구속된 2010년 9월 박씨 소개로 임 전 총장을 찾아가 상담한 후 수임료로 5000만원이 든 주머니를 전달했다. 박씨도 돈 받은 사실은 인정했기 때문에 무죄가 나오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검찰의 수사와 공판 진행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상당수 발견됐다. 우선, 김씨가 박씨 소개로 임 전 총장을 두 차례 만났음에도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최모 검사는 임 전 총장을 조사하지 않은 채 수사를 종료했다. 최 검사는 박씨 공소장에 “박씨는 임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전달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기재했다. 박씨는 그러나 “임 전 총장이 1990년대 말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장 시절 술자리에서 처음 소개받아 알게 됐고, 아내들끼리도 만나서 남편들 흉을 볼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경향신문에 밝혔다.
박씨는 5000만원의 행방과 관련해선 “김씨 일행이 (돈)주머니를 전해달라고 한 것은 맞지만, 다음날 (김씨 쪽에서) ‘급한 일이 생겼다’며 되찾아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 측에서 “수임료를 전달하고 박씨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이라며 검찰 수사 진행 상황을 일자별로 기록한 업무일지를 증거로 제출하면서, 박씨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도 돈을 돌려줬다는 박씨 진술은 ‘거짓’, 돌려받은 적이 없다는 김씨 진술은 ‘진실’ 반응이 나왔다. 수사검사도 결국 박씨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지만 공소장에 적힌 범죄사실은 단 여섯 줄에 그쳤다.
공판 과정 역시 석연치 않았다. 공판검사는 고소인 김씨를 상대로 자금 출처를 집중 추궁한 반면, 박씨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신문하지 않았다. 공판검사는 김씨가 자금 출처를 정확히 소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김씨 계좌에 대해 금융거래정보조회 요청을 하기도 했다. 박씨가 “검사 덕분에 무죄가 나왔다”고 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공판검사는 또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김씨의 무고 혐의 수사에 착수했다. 김지용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장은 “무죄 선고 전이라도 계좌조회 결과가 나오면 무고죄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취재 결과 김씨의 계좌조회 결과가 나온 것은 지난해 11월15일, 공판검사가 박씨에게서 무고죄 피해자 진술조서를 받은 것은 11월8일이었다. 김 부장 말과 달리 계좌조회 결과가 나오기 1주일 전 무고죄 수사에 들어간 것이다. 박씨는 또 “무죄가 선고되고 검사가 조사할 게 있다고 해서 갔더니, 자기들이 2010년 민홍규씨 사건 당시 돈의 행적을 조사한 게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검찰은 김씨 관련 계좌조회 결과를 이미 파악하고 있으면서 금융거래정보 조회를 또다시 요청한 게 된다.
박씨 공판이 열리는 동안 법무법인 바른의 검사장 출신 한모 변호사가 재판을 참관한 사실도 확인됐다. 법무법인 바른에서는 박씨 사건의 대리인 명단에 소속 변호사 9명의 이름을 올렸다. 한 변호사는 대리인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해당 재판에 이례적 관심을 보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한 변호사는 임 변호사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2008년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박씨는 지난해 12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사는 결심공판에서 구형을 포기했고, 무죄 선고에도 불구하고 항소하지 않았다. 대신 고소인 김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검찰은 올해 5월 김씨를 무고 및 위증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임 전 총장과 한 변호사는 박씨를 비호하거나 검찰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한 변호사는 “수사 과정에서 어떻게 진술하면 좋은지 박씨에게 조언해주고 공판이 열릴 때 방청석에 앉아 지켜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임 전 총장도 “민홍규씨를 위해 자문해준다고 말한 적이 없고, 일전 한푼 받은 적도 없다”며 “자기들끼리 무슨 장난을 쳤는지 모르지만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고소인 김씨를 대리한 황종국 변호사는 “모종의 손길이 뒤에서 작용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탐사보도팀 | 강진구·박주연 기자 jkk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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