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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女사장으로 살기, 중국·우간다보다 힘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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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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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기업이 당당한 나라]<중>'철의 여인' 외치는 여성기업

'여성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조사 54개국 중 42위
남성중심비즈니스 관행 적응 힘들고 편겨의 벽 높아
단순 지원금 배분 말고 女기업 특성 고려한 정책 필요


전업주부였던 L씨는 지난해 자체 브랜드를 론칭하고 화장품 사업에 진출했다. 보습ㆍ영양에 특화된 제품이 성공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초짜기업인지라 자금확보와 판로개척 등에서 곤란을 겪다가 정부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정책자금을 신청하려고 여러 기관을 찾아다녔는데 심사과정에서 있던 일을 그는 잊지 못한다.

"심사위원들이 저의 경력과 전문성 등 구체적인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전업주부가 사업을 해보겠다고 발표하네' 하는 표정으로 신기해하며 구경만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은자 대표가 만든 제과업체 철은인터내셔날의 사명 '철은'에서 '은'자는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철'자는 '철의 여인'을 의미한다. 여성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선 '철의 여인'이 돼야 한다는 그의 다짐과 고충이 묻어난다. 이 대표는 "예전보단 나아졌다지만 여성기업인 지원정책은 여전히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국은 '여성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조사에서 54개국 중 42위다. 글로벌 금융회사인 마스터카드가 여성기업가들의 사회환경적 비즈니스 기회 활용도, 기업활동 지원 정도 등을 나라(국)별로 평가한 '2017 여성기업가 지수' 결과다. 뉴질랜드가 1위였다. 한국은 태국(10위), 베트남(19위), 중국(31위), 우간다(41위)보다 여성이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다.

중소기업청이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 의뢰한 '2015 여성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기업인은 남성에 비해 불리하다고 느낀 점으로 '일ㆍ가정 양립 부담'(44.2%)을 꼽았다. '남성 중심 비즈니스 관행 적응 곤란'(39.5%)이란 의견도 많았다. 경영활동을 하면서 '차별대우를 받았다'는 여성기업인들도 12.0%나 됐다. 경영상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분야로는 '자금조달 등 자금 관리'(48.8%), '판매선 확보 등 마케팅관리'(46.2%)가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와 달리, 실제 정책지원 방향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한무경 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은 "현재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고 있는 사업은 여성기업 비중이 적은 제조업에 집중돼 있다"며 "비제조업에 대한 지원금 확대와 고용촉진지원금에서 취업자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제조업에 진출한 여성기업인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

정부의 정책방향이 여성기업인의 독특한 특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여성기업인은 상대적으로 '기업 안정'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통계치로도 분명히 나타난다. 남성기업인 300명과 여성기업인 300명의 초기 자본을 비교한 조사에서, 여성기업의 초기자본은 남성기업인의 3분의2 수준으로 나타났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일 수 있으나 여성 기업인이 성과 창출보다 '최악의 상황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여성기업인이 빚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다보니 각종 금융지원을 회피하고 있단 분석도 있다. 완구업체를 운영하는 여성기업인 B씨는 "주변을 보면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보면 각종 지원정책에 대한 정보도 부족해지고 많은 기회를 놓치게 돼 사업을 확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전했다.

여성기업인들의 이 같은 특성을 정책이 잘 반영해 맞춤형 지원도구를 설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양성 형평성 중심'의 단순 지원금액 배분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한미영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회장은 "새 정부의 여성경제 정책에 대한 여성기업들의 기대가 커진 상태인데 여성기업 정책을 전담하는 창구가 우선 마련돼야 한다"며 "현장 경험이 풍부한 여성기업인들과 소통하며 여성 맞춤형 정책지원책을 많이 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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