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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김정숙여사 獨 윤이상 묘지 찾아…'원조 블랙리스트' 재평가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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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박해 당했던 ‘천재 작곡가’

방북 논란 제대로 된 평가 못 받아

진실규명 통해 과장 사건 밝혀져

성악전공 김 여사 "노력해 볼 것"

올해 탄생 100주년 윤이상의 귀환

이데일리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윤이상은 남한과 북한, 동양과 서양의 두 세계에 몸담아온 특이한 존재였다.” 작곡가 윤이상(1917~1995) 평전을 낸 박선욱씨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있는 고(故) 윤이상(1917~1995)의 묘소를 가장 먼저 찾아 참배하면서 음악가 윤이상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그는 ‘원조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세계적인 작곡가로 손꼽히지만 과거 북한 방문과 관련된 논란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왔다. 김 여사의 이번 방문으로 음악가 윤이상이 재평가 받게 될지 음악계는 주목하고 있다.

음악적으로 윤이상은 동양과 서양을 끌어안았다. 사상적으로는 남북한 사이에서 이념 논쟁에 시달려왔다. 이 때문에 그의 음악은 유럽에서의 위상과 달리 국내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그를 기리는 사업들마저 정부 검열과 대중의 무관심으로 중단되거나 취소되는 사태를 겪어야 했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재조명하는 자리가 다수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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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전공’ 김정숙 여사, 윤이상 묘지에 동백나무 심다

김 여사는 이날 윤이상 선생의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공수해온 동백나무를 묘지에 심었다. 그는 “윤이상 선생이 생전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오셨는데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며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을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나무 앞에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석판에 금색으로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김 여사는 경희대에서 성악과를 전공했다. 이날 참배에는 발터 볼프강 슈파러 국제윤이상협회장과 박영희 전 브레멘 음대 교수, 피아니스트인 홀가 그로숍 등 윤이상 선생의 제자들이 함께했다.

박영희 전 교수는 “윤이상 재단이 2008년 고인의 생가를 매입했지만, 예산 문제로 기념관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윤이상을 기념하기 위한 ‘윤이상 평화재단’을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시켰다. 김 여사는 이와 관련 “한국이 지금까지 정치상황이 그래 가지고…”라며 “노력해보겠다”고 답했다.

△동양과 서양 음악 융합시킨 현대음악가

1960년대부터 독일에 체류한 윤이상은 유럽에서 동서양의 음악 기법·사상을 융합시킨 현대음악가로 평가받는다. 가야금 연주의 농현 기법을 비브라토로 바꿔 표현하고, 민요와 판소리에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서 내는 기법을 첼로나 바이올린 연주에 사용했다. 이를 통해 ‘동서양을 잇는 중계자 역할을 한 음악가’라는 지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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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에서는 “뿌리와 과정이 다른 두 세계의 문화 사이에서 창조의 고뇌를 끌어안은 세계적인 현대 음악가”로 평가한다. 윤이상은 이런 공로로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1988), 함부르크 자유예술원 공로상(1992) 등을 받았다. 독일 자어브뤼켄 방송은 1995년 윤이상을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에 선정했다.

동시에 윤이상은 국내에서 친북 인사로 낙인찍혀 있다. 그는 1967년 동베를린(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북한 방문이 빌미였다. 독일 유학생 시절 북한에 있는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직접 보겠다며 방북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기소되면서 줄곧 이념 논란에 시달렸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슈토크하우젠·지휘자 카라얀 등 세계적 음악가 200명이 탄원서를 제출해 풀려난 뒤 독일로 돌아간 윤이상은 1995년 베를린에서 영면할 때까지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은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조사를 통해 정권에 의해 과장된 사건으로 밝혀졌다. 윤이상평화재단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매년 가을 그의 고향 경남 통영에서 열려온 ‘윤이상국제콩쿠르’가 좌초 위기에 놓일 뻔했다.

윤이상평화재단은 “윤이상은 이념을 뛰어넘은 민족주의자”라며 “그는 일제강점기 때 무장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 직후 일본에서 돌아온 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만드는 등 사회를 외면하지 않고 자기 몸을 던져 시대와 호흡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상처입은 용’ 국내외서 불러내다

윤이상을 조명하는 일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올해 탄생 100돌을 맞아 그의 음악은 ‘줄소환’ 중이다. 코리안심포니는 오는 1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윤이상의 유작으로 알려진 ‘화염 속의 천사’를 연주한다. 국내 연주는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서울시향(1999년)과 부산시향(2001년)이 연주한 바 있다.

‘화염 속의 천사’는 독재 정권 시절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분신자살을 한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해 윤이상이 1995년 발표한 교향시다. 소재와 내용 때문에 오랫동안 ‘금지곡’으로 인식돼왔다. 코리안심포니는 “이 교향시를 실연으로 접할 기회는 흔치 않다”며 “반평생 조국을 잃은 유랑민으로 살다간 윤이상의 삶을 떠올리며 감상한다면 그 의미가 더 깊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윤이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온 첼리스트 고봉인은 9월22일 금호아트홀에서 헌정 무대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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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대기를 다룬 연극도 무대에 오른다. 경기도립극단은 오는 7~9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연극 ‘윤이상: 상처 입은 용’을 선보인다. 윤이상의 출생 일화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으로 10대 시절부터 50대까지 연령대별로 다른 윤이상을 등장시켜 그의 삶을 재연한다. 윤이상의 어머니는 태몽으로 용을 꾼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용은 지리산 상공을 휘돌고 있었는데, 몸에 상처가 있어 하늘 높이 날지는 못했다.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 윤이상의 삶은 ‘상처 입은 용’과 닮았다.

윤이상의 고향인 통영에서는 올초 ‘2017 통영국제음악제’를 시작으로 그의 음악이 1년 내내 울려퍼진다. 9월 22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과 지휘자 하인츠 홀리거가 이끄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하모니아 등을 연주한다. 이후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윤이상 음악으로 유럽투어를 간다. 함부르크 엘필하모니의 공식 초청을 받아 유럽 4개국가에서 6번의 공연을 진행한다.

윤이상은 1958년부터 1994년까지 기악곡 101곡, 성악곡 17곡 등 총 118곡을 지었다. 윤이상은 교도소에 있던 때 쓴 세 곡을 빼고 모든 작품을 유럽에서 창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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