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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인터뷰] 이제훈이 말한 '22살 박열'vs'22살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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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funE

[SBS funE | 김지혜 기자] 배우 이제훈의 22살의 기억이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꿈을 맹렬하게 좇아가던 순간이었어요. 꿈에 대한 이상향을 막연히 쫓다 보니 현실에 부딪혔죠. '이 일은 내가 좋아서만이 아니라 누군가 인정하고 (나를) 선택해야 할 수 있는 일이구나', '과연 내가 이걸 통해 밥 벌어 먹고살 수는 있을까', '만약 꿈을 이루지 못하고 군대-졸업-취업 과정을 밟아 사회에 자리 잡은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낙오자가 된 마음이 들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후,

"대학로에서 허드렛일 하면서 극장에 서고, 오디션 봐서 뮤지컬 무대에 단역으로 오르는 게 전부였어요. 저는 항상 되돌아갈 곳을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이 일이라는 게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24살 때 결심했죠. '모든 걸 버리고 다시 시작해보자. 연기에 뿌리내려보자'고요. 25살에 연기 전공으로 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을 다시 들어갔어요. 그게 내 꿈을 펼쳐나가는 어떤 전환점이 됐어요. 그리곤 앞만 보고 달렸어요. 그 전에는 갈팡질팡하거나, 양다리 아닌 양다리였거든요. 지금은요? 직진이죠"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5분이었다. '22살의 박열을 연기한 이제훈의 22살을 떠올려보면?'이라는 질문에 그는 인생의 가장 불완전한 시기였다고 과거를 회상했고, 내적 방향의 기억을 소환했다.

이제훈에게도 '박열'의 모습이 있었다. 그 역시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기만 한 시절이 있었다. 또한 냉혹한 현실과 부딪히면서도 열망을 꺾지 않았고, 스스로와 싸우면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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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은 1923년 도쿄, 6,000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제훈은 타이틀롤을 맡아 청년 박열의 뜨거웠던 이야기를 스크린에 살려냈다.

이제훈에게 있어 특별한 작품이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남겨진 '후회'라는 잔여물이 없었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쏟았기에 가능했던 만족감과 속 시원함이었다.

"어떤 작품이든 보고 나면 아쉬움이 남고 후회가 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달랐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연기해도 이만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그릇 안에서 후회 없이 쏟아낸 작품이에요"

'박열'에서 이제훈은 종전과 완전히 다른 이미지와 연기를 보여준다. 박열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이념으로 제국주의가 가진 폭력성에 대해 분노하고 행동으로써 투항한 인물이었다. 쉽지 않은 캐릭터고, 부담감도 상당했다.

"용맹과 기계가 넘쳤던 아나키스트의 면모, 그분의 신념과 사상이 나를 통해 표현되는 것에 막중한 임무와 사명감이 들었어요. 우선 그분에 관한 책이나 연인이자 동지였던 후미코의 자서전을 읽으며 두 인물에게 깊이 빠져들었어요"

대사의 70%가량을 차지한 일본어를 직접 소화하고, 감옥에서 말라가는 인물의 외면을 실감 나게 보여주기 위해 단식을 하며 체중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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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자유로운 영혼'에 가까운 호방한 성격을 묘사하는데 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다. 이제훈은 "뜨거운 불덩이처럼 보이지만 그가 가진 주체적 생각, 잡지를 발행하고 시를 쓰는 인텔리적 면모도 보여주고자 했어요. 제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진폭이 큰 역할이었어요. 그러면서도 인물이나 역사가 왜곡 혹은 미화되지 않게 신경 썼어요.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상황의 감정에 충실해서 돌발적으로 연기하는 제 스타일을 많이 제어하고 제 3자의 입장에서 인물을 관찰하고 정제된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기도 했고요."라고 말했다.

부담감은 마지막 촬영에서 폭발했다. 그간 가졌던 압박감의 눈물이 터져버린 것이다.

"이 인물이 위대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그걸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해드려야 하는데 '헛짓거리'나 '헛발질'하면 안된다고 거듭 마인드 컨트롤을 해왔거든요. 마지막 신을 찍고 나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번 영화는 나의 준비나 노력보다는 스태프 한분 한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는 감동이 밀려오더라고요."

이제훈은 이번 작품이 연기와 영화 선택에 대한 가치관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했다.

"관객들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킬링타임 영화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의미적으로 가치 있게 남겨지는 영화를 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어요. 개인적 욕망의 해소로서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를 할 때도 있지만 이런 인물을 만나 그분들이 추구했던 삶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과정 역시 저에겐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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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이제훈은 다양한 도전을 통해 스펙트럼을 점진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모습이 멋지다고 말하자 "쉴 틈 없이 지속해서 작품을 하고 있는 게 저 또한 신기해요. 그런데 그런 도전들이 겁나지 않은 것은 사람들에게 나를 더 보여주고 인식시켜주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물론 많이 준비하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죠. 이 정도 궤도에서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재미가 없다는 생각도 하고요.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자리니까요. 나라는 배우가 대중들에게 식상해 보이지 않도록 스스로 많이 개발하고 소진된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도 필요하긴 하겠죠. 그런데 요즘은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흑."

배우로서 자신을 자극하는 것을 꼽아달라고 하자 '영화'라고 답했다. 그는 "극장에서 좋은 작품을 보면 얼굴이 상기되고 마음이 뜨거워져요. 저 배우처럼 연기하고 싶다. 나도 저런 작품을 만나고 싶다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것들이 나를 동기화 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영화로 받은 자극을 다시 영화로 풀어내는 이제훈은 천상 배우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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