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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부모 국적 따지지 않는 다문화 청소년들의 하모니 '무지개 국악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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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만 명인 전북 순창군서 28일 창단

초3~중1 단원 40명 중 8명이 다문화자녀

도립국악원·순창군·교육지원청·현대차 지원 협약

1억2000만원 들여 악기 구입…매주 2번 교육

지역 공동체 안에서 동질성·자존감 높이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로서 올 2월부터 추진

가야금·해금·판소리 등 12개 분야 망라

"서로 사랑 나누는 선순환 구조 만들 터"

2012년 창단된 바람꽃 오케스트라 시즌2

보육원생 32명 구성…한국판 '엘 시스테마'

중앙일보

지난 21일 전북 순창군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무지개 국악오케스트라' 오리엔테이션에서 새내기 단원인 순창 지역초3~중1 청소년 40명과 이들을 지도할 전북도립국악원 단원 10명이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무지개 단원중 8명이 다문화가정 출신이다. [사진 전북도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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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이런 소리가 나와요?"

지난 21일 전북 순창군 순창읍 청소년수련관 3층 세미나실. 전북도립국악원 박지중(48) 단원이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가 '오나라'를 피리로 연주하자 중학교 1학년 김모(13)양이 "신기하다"며 이렇게 물었다.

이날은 순창 지역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청소년 40명이 전북도립국악원 단원 10명과 스승과 제자로 처음 인사하는 '오리엔테이션' 날이었다. 학생들은 28일 창단을 앞둔 '무지개 국악오케스트라' 새내기 단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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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전북 순창군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무지개 국악오케스트라' 오리엔테이션에서 전북도립국악원 소속 단원들이 다문화가정자녀 8명이포함된 청소년 단원들에게 장고와 피리 등 악기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사진 전북도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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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가운데 20%인 8명은 베트남과 캄보디아·중국 등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자녀다. 어머니가 일본인인 김양은 "악기를 배우면서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새로운 세계도 알고 싶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이모(12)양의 어머니는 베트남 출신이다. 이양은 "장날 아빠 손 잡고 시장에 갔다가 국악 공연을 봤는데 멋졌다"며 "가야금 연주자가 꿈"이라고 했다.

전북도립국악원은 순창 지역 다문화가정 청소년에게 전통 예술 교육 기회를 주고 문화적 동질성과 자존감을 높여 주기 위해 올 초부터 오케스트라 창단을 추진해 왔다. 슬로건은 '일곱 무늬 꽃송이들의 왁자지껄 놀이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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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전북 순창군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무지개 국악오케스트라' 오리엔테이션에서 전북도립국악원 소속 한 단원이 청소년 단원들에게대금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사진 전북도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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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창단을 위해 전북도립국악원(3800만원)과 순창군(3000만원), 순창교육지원청(2700만원), 현대자동차(2500만원) 등 4개 기관이 모두 1억2000만원을 모으고 역할을 나눴다. 전북도립국악원이 단원 교육, 순창군이 오케스트라 운영, 순창교육지원청이 학생 관리 및 차편 지원, 현대자동차가 악기 구입 등을 맡았다. 예술기관과 교육기관, 지자체, 대기업이 협력하는 전북판 '공공예술 프로젝트'인 셈이다.

인구 3만 명인 순창은 다문화가정 비중이 높은 편이다. 순창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이 지역 유치원과 초·중·고교 전체 재학생 2715명 가운데 11.75%(319명)가 다문화가정 자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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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전북 순창군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무지개 국악오케스트라' 오리엔테이션에서 전북도립국악원 소속 한 여성 단원이 청소년 단원들에게해금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사진 전북도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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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립국악원은 일대일 단원 면접 과정에서 지원자에게 어머니의 국적이나 부모 직업 등을 묻지 않았다. 질문 자체가 차별로 비치거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오케스트라 지원 동기나 희망 악기 등을 파악해 파트를 골고루 배정했다고 한다.

무지개 오케스트라는 가야금과 거문고·해금·아쟁·대금·태평소 등 12개 분야로 구성된다. 전북도립국악원 단원 10명이 다음 달부터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두 차례 순창을 방문해 단원들을 지도한다. 교육은 순창군 청소년수련관에서 오후 4시30분부터 6시30분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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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전북 순창군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무지개 국악오케스트라' 오리엔테이션에서 전북도립국악원 소속 한 단원이 청소년 단원들과 상담하고있다. [사진 전북도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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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는 전북도립국악원 부지휘자를 지낸 대금 연주자 조재수(54)씨가 맡았다. 조씨는 "기존 곡들을 아이들이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했다"고 말했다.

순창교육지원청은 교육이 있는 날마다 택시 10대와 승합차 1대를 빌려 단원들을 실어나를 예정이다. 김용군 순창교육장은 "단원마다 학교와 집이 제각각인 데다 변두리나 산골짜기인 곳이 많아 연습장과 집까지 안전한 이동을 위해 왕복 차편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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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말 전주전통문화관에서 열린 '바람꽃 국악오케스트라'의 세 번째 정기공연. 보육원생 32명으로 구성된 바람꽃 오케스트라는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한 무지개 오케스트라의 전신 격이다. [사진 전북도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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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오케스트라는 전북 전주의 '삼성휴먼빌(옛 삼성보육원)' 보육원생 32명으로 구성된 '바람꽃 국악오케스트라'의 시즌2 성격을 지닌다. 바람꽃 오케스트라는 베네수엘라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오케스트라인 '엘 시스테마(El Sistema)'를 본떠 전북도립국악원이 2012년 8월 창단했다.

그동안 전북 고창과 장수 등 농촌 지역을 돌며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연주회를 여는 등 모두 15차례 무대에 섰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정기 공연을 마지막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최근 1, 2년 사이 고교를 졸업하거나 가정으로 복귀한 단원이 17명이나 돼 구조적으로 오케스트라 운영이 어려워져서다.

김종균(46) 전북도립국악원 기획팀장은 "무지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1년 뒤에는 복지시설이나 지역 축제 등에서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악기를 배우며 자긍심을 얻은 아이들이 또 다른 소외된 이웃에게 재능을 나눠주는 '사랑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순창=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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