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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왜냐면] 고종, 전기 그리고 4차 산업혁명 / 조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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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최초의 황제인 고종은 나라 잃은 비운의 왕으로 주변에 휘둘렸던 유약한 모습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는 12살에 왕위에 올라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 일본과 러시아 등 외세의 내정 간섭으로 힘겨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1897년 조선이 자주국가임을 알리며 대한제국을 선포하기도 했지만, 1907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했다. 그런 고종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혁신을 위해 눈물겹게 노력했던 개화 군주라고 한다면 과장된 말일까.

고종은 1887년 아시아 최초로 전등을 도입해 경복궁 건청궁에 전깃불을 밝혔다. 에디슨이 미국에서 전구를 발명한 지 불과 8년 만이었고, 일본과 중국의 궁궐보다 2년이나 앞선 일대 사건이었다. 고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개인 돈을 내놓아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력회사이자 한국전력의 시초인 ‘한성전기’를 설립했다. 서울 종로에는 도쿄보다 3년 먼저 전차가 다니게 됐고, 전력 수요 충당을 위해 75㎾ 규모의 발전소를 동대문에 세웠다. 한성전기 설립 2년 만에 일반 가정에까지 전등을 보급했다. 안팎의 압력과 감시로 운신의 폭이 좁았지만, 고종은 당시로서는 도깨비불처럼 낯설었을 전기를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도입하겠다는 혁명적인 구상을 한 것이다.

필자가 몸담은 한전에서는 ‘대한민국 전기역사 뿌리찾기’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데, 한성전기 설립 파트너였던 미국인 해리 보스트윅의 3세 후손들과 연락이 닿아 집안에서 보관해온 사료들을 기증받는 획기적인 사건이 지난달 있었다. 한성전기에 대해 보도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기사 스크랩, 실무자들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메모들, 한성전기와 관계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회사 설립 청원서까지 하나같이 놀랍고 귀중한 사료들이었다. 특히 고종이 보스트윅과 주고받은 서신들을 보면서 그가 꿈꾼 나라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깨닫게 됐다. 그는 우리나라가 외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근대화가 절실하고, 그 핵심이 전기라는 것을 직관했던 것이다. 역사적 실체를 정확히 밝히려면 학자들의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이 사료들만으로도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던 고종의 결단과 노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대한제국을 발밑에 두려는 열강의 반대와 국고 탕진이라는 백성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고종은 전력산업 육성을 위해 끊임없이 애썼다. 올해는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수립하고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사용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연호에 에너지를 상징하는 ‘빛 광’(光)이 있는 것도 남달라 보인다. 내년은 한성전기, 다시 말해 한전의 창립 120주년이다. 한전은 보스트윅 후손이 기증한 사료들과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을 디지털화해 전자박물관을 구축하고, 국민들에게 공개 전시할 계획이다.

대한민국 전력사의 뿌리를 찾는 노력은 한전이란 회사만의 일이 아니라, 구한말과 고종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비록 나라를 잃고 말았지만 고종은 그 혹독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위민 정신을 발휘한 것이다. 그러한 정신은 오늘날의 4차 산업혁명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고종이 뿌린 전기의 씨앗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낳은 초석이 됐다. 그는 더 이상 가련한 왕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예측하고 전기회사를 직접 설립한 개화 군주이자 실천가였다.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과 신에너지생태계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서구 문명을 적극 받아들이고 헤이그 밀사를 파견했던 고종의 과감하고 혁신적인 실행이 다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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