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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건강한 가족] 매년 3500명 걸리는 자궁경부암, 백신 무료 접종이 퇴치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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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예방접종 지정 1주년

백신 안전성 높고 효과 커

올해 대상 절반이 안 맞아

전문의 칼럼 분당차병원 부인암센터 주원덕 교수

중앙일보



천연두는 전 세계 사망 원인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재앙에 가까운 질병이었다. 하지만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적인 ‘박멸’ 발표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796년 영국의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발견한 우두접종법으로 예방접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서 전염병이 소멸되기 위해서는 96~99%의 예방접종률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천연두가 ‘사라진 질병’이 된 것도 많은 사람이 예방접종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접종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소의 고름을 사람에게 투여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신이 내린 벌을 감히 인간이 고치려 든다’는 반발 때문이었다.

신이 내린 벌, 한국 여성들에게는 자궁경부암이 그런 병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자궁경부암이 국내 여성의 암 발생률 1위를 차지하던 20년 전만 해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생활환경이 좋지 않거나 출산을 많이 한 여성에게 찾아오는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예방이 어려워 뒤늦게 병을 발견하고 자궁을 적출하는 여성이 많았다.

예방 백신이 개발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매년 약 3500명의 여성이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는다. 심지어 암과는 연관이 적은 것이 마땅한 20~30대에서 자궁경부암 및 전암(前癌) 단계 환자가 늘고 있으니, 과거 그 고통을 지켜봐 온 의사로서 애석할 따름이다.

자궁경부암의 원인인 인유두종바이러스(HPV)는 자궁경부암 환자 중 99.7%에서 발견된다. 성 접촉을 통해 굉장히 쉽게 전염되기 때문에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흔한 바이러스다. 하지만 제때 예방하지 않으면 목숨을 앗아가는 각종 암을 일으킬 수 있다. 자궁경부암 백신은 자궁경부암 환자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HPV 유형을 예방한다. HPV 4가 백신을 접종한 미국에서는 14~19세 여학생에게서 해당 HPV 유형의 유병률이 64% 감소했고, 덴마크에서는 자궁경부암 바로 전 단계인 전암 3기의 위험이 최대 80% 감소했다. 현재 국가 차원에서 소아·청소년에게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하는 나라는 총 70개국이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6월 자궁경부암 백신을 국가예방접종 프로그램에 도입해 드디어 무료 접종 1주년을 맞았다. 시행 전 온라인으로 확산된 우려의 목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안전하게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그 덕에 부모들의 인식도 긍정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아직도 진료실에서 “꼭 맞혀야 하나요?”라고 질문하시는 부모가 있다. 그때마다 필자는 이 백신은 안전할 뿐만 아니라 성 경험이 없는 만 9~14세에 접종해야 그 효과가 가장 높다는 점을 강조하곤 한다.

오랫동안 여성들을 괴롭혀 온 자궁경부암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인 HPV를 박멸해야 한다. 접종률이 높아지면 10년, 20년 뒤에는 자궁경부암도 천연두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질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생식기 사마귀, 질암, 항문암, 외음부암 등 HPV가 유발하는 각종 질병들도 함께 말이다.

올해까지 무료접종 대상인 2004년생 여자 어린이 10명 중 5명은 아직 접종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곧 여름방학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궁경부암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장 크게 길러줄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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