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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정부 지원금 EBS 귀속 폭로 PD "해묵은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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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제작사 '블루라이노' 대표 박환성 PD 대면 인터뷰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EBS의 정부지원금 일부 귀속 요구를 폭로한 박환성 PD는 야생·환경 전문 독립PD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1인제작사 블루라이노(파란색 코뿔소)의 이름도 이같은 전문성에서 유래됐다. <관련 기사 : 제작사 정부지원금 손댄 EBS..정부·기관 소극적>

박 PD의 스튜디오를 지난 21일 저녁 찾았다.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격앙된 어조로 EBS의 불합리를 지탄한 그였지만, 이날(21일) 저녁은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다만 눈빛은 회한으로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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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PD는 EBS의 정부 지원금 요구가 이번 뿐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미 2009년 EBS와 3부작 자연 다큐멘터리를 준비했을 때도 이번 경우와 똑같은 요구를 받았다고 전했다.

박 PD는 “당시에는 코카(KOCCA, 한국콘텐츠진흥원)로부터 지원비를 받고 계약비 변경 합의서를 작성하고 이중 60%를 EBS가 가져갔다”며 “2009년부터 해왔다고 쳐도 최소 10년은 이 같은 관행이 유지돼 왔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EBS가 정부 국고지원금을 협찬으로 규졍하면서 이번 논란이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박 PD는 지난 19일 자신이 EBS 우종범 사장 명의로 보낸 내용 증명에서도 ‘EBS 대표이사는 국민 세금이자 국고 보조금인 정부지원금을 사기업에나 적용할 법한 협찬으로 규정하는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적었다.

사실 정부 지원금은 내부 인건비로도 쓰지 못한다. 엄격한 관리가 필수다. 촬영 현지 숙박비처럼 제작에 필요한 직접비로만 사용돼야 한다. 예산 집행 기관도 철저한 영수증 증빙을 제작사에 요구한다.

문제는 이런 증빙 과정에 있어 탈법 행위가 빈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박 PD는 “가짜 영수증이라도 만들어 허위 보고를 해야한다”며 “EBS 자기네는 알바 아니다라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이런 박 PD에 대해 EBS는 ‘계약 위반’ 사항을 문제 삼았다. 사전 고지 없이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와 한국전파진흥협회(RAPA)가 주관한 정부지원 사업(2017년 차세대방송용콘텐츠(UHD) 제작지원-중소사업자 부문)에 박 PD가 지원해 정부 지원 예산을 따낸 점이다.

실제 지난해 8월 박 PD와 EBS가 사인한 방송 프로그램 표준 계약서에 따르면 박 PD는 계약 위반을 했다. 계약서 내 제작비 감액 조항인 제18조 3항을 보면 제작사는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해 제3자로부터 EBS와 합의 없이 제작비를 지원 받으면 제작비 일부를 전액 혹은 일부를 감액할 수 있다. EBS는 이를 근거로 박 PD를 압박했다.

정부 지원금 귀속 근거가 되는 조항은 제작협찬 관련 조항인 제16조다. 제16조 4항은 ‘EBS는 제작사에 무리한 협찬을 강요해서는 아니되며, 계약 후 제작사의 협찬 유치에 대해서는 EBS의 외주제작사 상생협력 방안에 따른다’고 적시돼 있다.

이 조항이 적힌 페이지에는 박PD의 인감이 찍혀 있다. 계약서 조항에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EBS가 내놓은 23일 해명 자료에서도 박 PD가 사전 고지 없이 정부지원 제작금을 받아 계약 위반을 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박 PD의 말을 들어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는 “계약 당시(지난해 8월) 편성기획팀에서 예산을 이것밖에 못 주니 부족분은 정부지원금에서 받아서 쓰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근거로 제시한 EBS 직원 간의 대화 녹취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16조에 있는 상생협력방안도 논란의 대상이다. 박 PD는 “상생협력방안에 따르면 20%는 제작사 인센티브, 40% 제작비 투여, 40% EBS 간접비 귀속‘이 원칙이라고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부지원금은 열악한 외주제작사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급하는 것”이라며 “이걸 갖고 방송사가 협찬으로 인지한다는 것 자체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PD는 이런 관행이 묻혀져 왔던 점에 다시 한번 개탄했다. 그는 “다큐프라임에 방영되는 다큐멘터리의 절반 정도는 독립PD들이 만들고 있다”며 “칭찬받는 공영방송 프로그램이지만 내부는 (독립PD들의) 짜내기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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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생인 박 PD는 지금까지 미혼으로 살아왔다. 그는 일생을 방송 현장, 특히 자연 다큐멘터리 분야에 바쳤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가장 많이 방영해준 공영방송과 싸운다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박 PD는 “이번에 대충 무마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며 “하지만 또 다른 후배가 이 같은 일을 겪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런 불합리를 고치기 위해 끝까지 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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