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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朝鮮칼럼 The Column] '뭘해도 잘되는 나라'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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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개편과 인력 조정보다 의사 결정 시스템 개선하고

결정된 것은 실행력 높여야 국가가 성공할 수 있는데

한국은 이 부문 최악 수준… 새 정부에 부여된 큰 과제

조선일보

변양호 前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비슷한 인력과 시설을 가졌어도 어떤 기업은 성과가 좋고 어떤 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세계적인 전략 컨설팅 회사 베인(Bain)은 2010년에 발간한 '결정하는 조직, 행동하는 조직'이라는 책에서 조직을 개편하거나 인력을 조정하는 것보다 의사 결정 시스템을 개선하고 결정된 사항에 대한 실행력을 높이는 것이 경쟁력의 요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베인은 2000년에서 2006년 사이에 추진된 약 60개 기업의 조직 개편 사례를 연구한 결과, 대부분의 조직 개편이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거나 심지어는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베인은 최적의 조직 구조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말고 의사 결정과 집행 프로세스를 평가해 그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베인의 주장은 기업 분석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지만 국가에도 적용할 여지는 충분하다. 국가도 끊임없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함으로써 운영되기 때문이다. 다만 투명성이 기업보다 더 요구될 뿐이다.

우리나라는 종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부 조직을 크게 개편해 왔다. 하지만 그 정부 조직 개편이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평가받은 적이 없다. 이번 정부는 다행스럽게도 정부 조직을 거의 손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내년에 있을 개헌을 계기로 정부 조직도 본격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정부 조직을 어떻게 개편해도 큰 효과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정책 결정과 집행 프로세스는 최악이다. 우선 정책 결정 기구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정부가 결정해야 할 경제 문제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대통령과 장관의 수직적인 관계에 의존하고 있어 이런 문제를 결정하기 어렵다.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당정회의도 정책 결정 기능을 수행한다고 하기 어렵다. 다만 청와대 수석과 관련 장관이 참석하는 서별관회의가 정책 결정 기구로서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해 왔지만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 총리의 역할도 불분명하다. 정책 결정을 해야 하는지, 집행을 책임져야 하는지 모호하다. 행정부를 떠나 국회로 가보면 절망스럽다. 행정부에서 어떤 결정을 해도 국회는 따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행정부가 요청한 법안 개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회의 협조 없이는 정책 집행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조선일보

2005년 고이즈미 '공무원 개혁' 주요 내용. /조선일보 DB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중요한 정책을 공산당에서 결정한다. 각 부처는 공산당에서 결정한 정책을 충실하게 집행한다. 민주적 절차가 결여돼 있지만 나름 효율적이다. 최고의 개혁 총리라고 평가받는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신설해서 이를 정책 결정 기구로 만들었다. 총리가 주재하는 이 회의에는 민간 전문가 4명, 장관 5명, 일본은행 총재가 참석해 난상토론을 거쳐 정책을 결정했다. 의사록은 3일 후에 전부 공개해 투명성을 높였다. 일본은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어 이 회의에 참석하는 장관들은 모두 중진급 국회의원이다. 이들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회의는 절차적 측면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훌륭하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 회의를 통해 부실채권 정리, 우정성(郵政省) 민영화 등 어려운 구조 개혁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새 정부가 과연 어떻게 정책 결정과 집행 프로세스를 개선해 나갈까 궁금하다. 최근에 청와대 정책실장이 서별관회의는 폐지하고 경제부총리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하겠다고 했는데 올바른 방향이다. 한편 대통령이 주재하는 일자리위원회가 신설됐고 제4차산업 관련 위원회도 만든다고 하는데 혹여 이들 위원회가 경제부총리와의 관계에서 혼선을 주지는 않을지 걱정도 된다. 국회와의 관계는 아직 개선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정책은 결국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지도자들이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가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의사 결정 기구를 꼭 다기(多岐)화해야 할 이유는 없다. 고이즈미 방식을 생각해 본다면 대통령과 관련 부처 장관 등 행정부 측 인사, 협치 혹은 연정 참여 정당의 정책위의장, 민간 전문가 등 열두세 명 정도의 참석자가 끝장 토론을 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하나의 기구만 있으면 충분할 수도 있다. 관련 장관과 민간 전문가는 사안에 따라 교체하면 된다. 사후에 회의록을 공개하고 국무총리는 장관들과 함께 이렇게 결정된 정책을 책임지고 집행하면 된다.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도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되지 않는다면 개헌을 통해 내각책임제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행정부와 국회가 정책 결정 권한과 책임을 공유해야 이런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양호 前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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