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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밀착취재] 바닥분수서 뒹구는 아이들… 전염병 무방비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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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자치구, 설치에만 급급 관리감독 ‘허술’ / 고장 제외한 204개 중 44% ‘엉망’ / 12곳 세균 초과·76곳 검사횟수 위반 / 여름철 ‘레지오넬라증’ 유발 위험 / 서울시 “예산 탓 전수관리 어려워” / 환경부 “법적기준 따라 관리 유도” / 아파트내 시설은 ‘사각지대' 지적

세계일보

서울의 한낮 기온이 30도까지 오른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물빛광장을 찾은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이모(35·여)씨는 최근 날이 무더워지면서 6살 아들과 가끔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 있는 물빛광장을 찾는다. 더운 날씨에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신나게 뛰노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따로 피서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가 좋아하니까 가끔 짬을 내서 나오긴 하는데,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이 많다보니 물이 깨끗할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도심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분수대 등 물놀이형 수경시설을 찾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특히 바닥분수나 인공폭포, 물놀이장 등 직접 물을 만지거나 물속에 들어갈 수 있는 ‘접촉형 수경시설’이 인기다.

당연히 엄격한 수질 관리가 필수지만 수질 정화 시설을 갖추지 않아 여름철 전염병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씨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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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시의회 성백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서울시와 각 자치구에 설치된 물놀이형 수경시설은 218개소로, 이 중 고장이 난 곳을 제외한 204개소의 44%인 89개소가 수질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동 중인 시설의 절반 정도가 해당된다.

수질 기준치를 초과한 세균 등이 검출된 시설은 12개소(6%)였고, 76개는 수질검사 횟수를 위반하거나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물놀이형 수경시설을 강제성이 없는 지침 형태 운영할 수 있도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가 수경시설 설치에만 매달렸을 뿐 관리감독은 허술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시와 자치구는 인력과 예산 부족 등으로 전수관리를 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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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시설은 2000년 중반부터 꾸준하게 늘었다. 특히 분수대에서 자주 뛰어노는 어린이들이 언제든 물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위생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수경시설의 관리 소홀로 수질이 나빠질 경우 유발될 수 있는 대표적인 질병은 두통, 기침, 호흡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는 전염병 레지오넬라증이다.

최근에는 아파트 단지에서 바닥분수 형태의 수경시설을 설치하는 곳이 많은데, 수질 관리를 자체적으로 하다보니 입주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바닥분수는 주로 지하에 매설돼 한번 설치하면 개보수가 어렵고 사용된 물이 저수조에 들어가 재사용되기 때문에 오염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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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여름이면 하루 6∼8시간 바닥분수를 가동하는데 구청에서 별도 관리 지침이 내려온 적은 없다”며 “자체적으로 일주일에서 열흘에 한 번씩 물을 갈고 염소로 매일 소독하고 있는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 1월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을 시행해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이 설치·운영하는 시설,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 관광지·관광단지, 도시공원, 체육시설, 어린이놀이시설에 설치하는 민간 물놀이형 수경시설 등은 신고대상 시설로 지정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물놀이형 수경시설에 대한 신고와 수질 검사 및 기준 준수가 의무화돼 법적 기준에 따라 관리를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 내 수경시설 등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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