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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요금설계권마저 정부가 가져가나"…거꾸로 가는 통신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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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율 가격통제에 이어 이젠 정부가 요금제도 만드는 꼴"…'규제완화' 글로벌 트렌드 역주행]

대한민국 통신 정책 기조가 또 흔들리고 있다. 요금 인가제 폐지·기간통신사업 진입 완화 등 한동안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해왔던 정부가 이제는 요금 설계권 등 사업자의 자율권을 옥죄이는 규제 권한을 대폭 늘리는 모양새다. 22일 발표된 문재인 정부 첫 통신비 경감 대책이 그 신호탄이다. 방송·통신 융합과 미디어의 탈(脫)국경화로 세계적으로 방송통신 규제 완화가 대세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통신정책만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머니투데이

◇선택약정할인율 상향·보편적 요금제 의무화 논란…무소불위 ‘미래부’=22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통신비 경감 대책의 핵심은 선택약정할인율 상향조정과 보편 요금제 출시 의무화 안이다.

먼저 선택약정할인이란 이동통신 가입자가 휴대폰을 살 때 공시 지원금 대신 약정기간 동안 이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현행 20%인 할인율을 25%로 끌어올리겠다는 것. 이 방안이 실현되면 월6만6000원짜리 요금제 가입자는 현재보다 월 3000원 가량 추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가입자들은 혜택이 늘지만 이통사들이 받는 매출 타격은 심각하다. 대신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할인율이 25%로 조정될 경우 선택약정 가입자 비율이 그대로라 해도 연간 3200억원의 매출이 줄어든다. 선택약정 가입자 비율이 50%를 넘어설 경우 손실 규모는 무려 1조7000억원이다.

문제는 정부가 선택약정할인제를 도입했던 제도 취지와 전혀 다르게 정부의 인위적 통신비 통제수단으로 남용한다는 점이다. 선택약정할인제는 당초 공시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자급제폰 혹은 중고폰 사용자들에게도 이에 상응하는 혜택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정부가 요금 할인율을 올리거나 내리는 근거는 지원금 가입자의 월평균 요금수익에 월 평균지원금(이통사 재원)을 나눈 지원율에 미래부 장관의 5%포인트 올리거나 내릴 수 있는 재량권이다.

그러나 이같은 자의적 기준도 문제지만 미래부 장관의 재량권 자체도 워낙 임의적이라 권한 남용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만약 이대로라면 언제든 정부가 원할 때 맘대로 할인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택약정할인율 조정권이 과거 어떤 제도보다 더 강력한 가격 통제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업계는 이번 선택약정할인율 인상에 위법 요소가 없는지 법률 검토에 들어갔으며 경우에 따라 단통법 위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계획이다.

정부가 중장기 대책으로 제시한 보편 요금제 출시 방안도 민간 사업자의 자율권한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는 지배적 통신 사업자가 저렴한 보편 요금제를 의무적으로 출시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월 2만원에 음성 200분, 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요금제를 출시하겠다는 의지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 관련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업계는 사실상 미래부가 요금제 설계권을 갖겠다는 구상이라며 반발한다. 정부 요구에 의해 최저가 데이터요금제가 설정되면 나머지 요금제 역시 전면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업자 자율에 맡겨진 요금 설계 권한을 미래부가 갖겠다는 것으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나올 경우 위헌 소송을 검토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규제 완화하겠다더니...글로벌 트렌드 거꾸로 가는 통신정책=사실 미래부는 지난 2015년 사전 요금 인가제 폐지와 경쟁 활성화를 통한 시장 구조 개편을 골자로 새로운 중장기 통신정책 방안을 마련한 후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방송통신 융합으로 대변되는 미디어 빅뱅기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다.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시행되는 요금 인가제를 폐지하겠다던 당시 미래부의 선언은 지난 수십년간 이어왔던 통신정책의 전면적인 방향전환을 예고하는 변곡점으로 해석돼왔다.

정부는 보편 요금제 외에 나머지 요금에 대한 인가는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보편 요금제 의무화가 기존 요금 인가제를 뛰어넘는 강력한 가격 통제수단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정기획위의 압박을 기회 삼아 부처 규제 권한을 확대한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통신 경감 대책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결국 연간 5조원 이상 규모 통신사 매출이 급감하고 이로 인해 5G 투자가 지연되면서 산업 생태계가 크게 황폐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현재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기술, 서비스 주도권 경쟁이 한창인 제4차산업 혁명 시대에 정부 정책에 의해 산업 경쟁력이 악화되는 실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다.

장석권 한양대 교수는 “정부의 인위적인 요금 조정은 품질, 서비스질 하락으로 이어지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며 “4차산업혁명 등 새로운 먹거리와 밀접한 정보통신산업의 정책 방향은 요금 인하 강요 보다는 투자 확대를 통한 산업 발전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지적했다.

임지수 기자 ljs@mt.co.kr, 김은령 기자 tauru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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