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채, 특히 합죽선을 만들려면 장인(匠人)의 공력과 함께 반드시 좋은 재료가 있어야 한다. 대나무는 짧은 마디의 왕대를 사용하는데 완전히 성장하여 실하게 쇤 대나무여야 한다. 고르게 쪼갠 대쪽을 양잿물에 삶으면 색이 노랗게 변한다. 노랗게 물든 겉대를 얇게 깎은 다음, 민어의 부레를 끓여 쑨 ‘민어풀’로 두 쪽의 대나무를 맞붙여 부채 살을 만든다. 합죽(合竹)을 하는 것이다.
이어, 합죽한 부채 살의 아래쪽(손잡이 쪽) 넓은 부분에 일정하게 줄을 맞춰 인두로 낙죽(烙竹:대나무를 지짐)하여 박쥐 모양의 무늬를 놓는다. 박쥐 모양의 무늬를 놓는 까닭은 ‘복 복(福)’자와 음이 같은 ‘박쥐 복(?)’자가 형상하는 박쥐를 무늬로 놓음으로써 ‘福’을 빌고 또 받기 위해서이다.
무늬 놓기를 마친 부채 살을 묶어 고정한 다음, 그 위에 종이를 붙인다. 마침내 대나무와 종이가 혼인을 하는 것이다. 문당호대(門堂戶對:혼인하는 양 집안의 가세가 비슷해야 한다)! 좋은 대나무 재료를 정성을 다해 다듬어 부채 살을 만들었으니 종이 또한 최고 품질의 종이를 사용해야 한다. 당연히 천년을 보존할 수 있다는 전주 한지를 사용한다.
합죽선의 종이는 질기기도 해야 하지만 먹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 합죽선 종이 위에 멋진 서화 작품을 그려 넣어야만 부채의 풍류가 제대로 사는데 종이가 좋아야만 서화가 윤기 있게 잘 들어앉기 때문이다.
혼인을 마친 대나무와 종이는 그날로 ‘바람’이라는 아들을 낳는다. 풍류가 충만한 멋진 바람을 귀한 아들로 낳는 것이다. 어찌 아니 시원한 바람이겠는가.
[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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