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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알쏭語 달쏭思] 부채(5)-종이와 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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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와 종이가 혼인하여 자식을 낳으니 바로 맑은 바람이라(紙與竹而相婚 生其子曰淸風).” 누구의 글에 나오는 구절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포털사이트는 물론 한국고전DB를 검색해도 이 구절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처럼 멋진 말을 읊은 지은이가 있을 텐데 찾지 못하니 안타깝다.

좋은 부채, 특히 합죽선을 만들려면 장인(匠人)의 공력과 함께 반드시 좋은 재료가 있어야 한다. 대나무는 짧은 마디의 왕대를 사용하는데 완전히 성장하여 실하게 쇤 대나무여야 한다. 고르게 쪼갠 대쪽을 양잿물에 삶으면 색이 노랗게 변한다. 노랗게 물든 겉대를 얇게 깎은 다음, 민어의 부레를 끓여 쑨 ‘민어풀’로 두 쪽의 대나무를 맞붙여 부채 살을 만든다. 합죽(合竹)을 하는 것이다.

이어, 합죽한 부채 살의 아래쪽(손잡이 쪽) 넓은 부분에 일정하게 줄을 맞춰 인두로 낙죽(烙竹:대나무를 지짐)하여 박쥐 모양의 무늬를 놓는다. 박쥐 모양의 무늬를 놓는 까닭은 ‘복 복(福)’자와 음이 같은 ‘박쥐 복(?)’자가 형상하는 박쥐를 무늬로 놓음으로써 ‘福’을 빌고 또 받기 위해서이다.

무늬 놓기를 마친 부채 살을 묶어 고정한 다음, 그 위에 종이를 붙인다. 마침내 대나무와 종이가 혼인을 하는 것이다. 문당호대(門堂戶對:혼인하는 양 집안의 가세가 비슷해야 한다)! 좋은 대나무 재료를 정성을 다해 다듬어 부채 살을 만들었으니 종이 또한 최고 품질의 종이를 사용해야 한다. 당연히 천년을 보존할 수 있다는 전주 한지를 사용한다.

합죽선의 종이는 질기기도 해야 하지만 먹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 합죽선 종이 위에 멋진 서화 작품을 그려 넣어야만 부채의 풍류가 제대로 사는데 종이가 좋아야만 서화가 윤기 있게 잘 들어앉기 때문이다.

혼인을 마친 대나무와 종이는 그날로 ‘바람’이라는 아들을 낳는다. 풍류가 충만한 멋진 바람을 귀한 아들로 낳는 것이다. 어찌 아니 시원한 바람이겠는가.

[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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