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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돈줄 움켜쥔 미국, 한국경제 미칠 파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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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올해 두 번째로 기준금리 인상… 1400조원 육박하는 가계부채 시한폭탄



경향신문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1년간 기준금리를 동결해온 한국은행에 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해 말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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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본격적인 ‘돈줄 조이기’에 나섰다. 올해 두 번째로 단행된 기준금리 인상에, 연방준비제도(Fed)의 보유자산 축소까지 예고하며 긴축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3개월 만에 다시 올리면서 한국과 미국의 금리는 12년 만에 같은 수준이 됐다. 여기에 연준이 올해 하반기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고하면서 14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한국 경제에도 경보음이 켜졌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5월 14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00~1.25%로 종전보다 0.25%포인트 끌어올리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인 연 1.25%와 상단이 같아진 것이다. 미국 실업률이 16년 만에 최저치인 4.3%로 떨어지는 등 경기회복세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다.

연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잔뜩 덩치를 키워놨던 4조5000억 달러의 보유자산 축소 방침까지 밝혔다. 금융위기 때 달러를 찍어내 사들였던 국채와 주택담보증권 등을 다시 시장에 내다팔아 돈줄을 죄겠다는 의미다. 금리인상에 더해 자산 축소라는 ‘쌍끌이 전략’으로 긴축기조에 시동을 건 셈이다.

연준은 이날 “경제가 기대만큼 광범위하게 진전된다면” 보유자산을 올해 안에 단계적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FOMC 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산 축소는 앞으로 몇 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며 “비교적 빨리(relatively soon)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예고된 일이었지만, 연준이 보유자산 축소계획을 분명히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FOMC 정례회의는 오는 9월과 12월에 열린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9월 회의에서 자산 축소 시점을 발표하고, 12월에 추가 금리인상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0~0.25%까지 낮췄다. ‘제로 금리’로 더 이상 금리를 낮출 수 없게 되자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장에서 채권을 사들여 시장 금리를 추가로 낮췄다. 그 결과 2007년 8000억 달러 수준이었던 연준의 자산은 4조5000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연준의 보유자산 축소는 시장에 풀린 돈을 회수하는 긴축 효과가 생기며 사실상 금리인상과 같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연준의 계획대로라면 보유자산 축소는 연간 기준금리를 1회 인상하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연준이 예고한 연간 3000억 달러의 보유자산 축소가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과 맞먹는다는 분석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금리인상보다 자산 축소에 따른 시장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연준은 2019년까지 연 3회 금리인상을 예고한 바 있다. 단계적으로 금리를 연 3%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옐런 의장이 올해 한 차례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함에 따라 오는 9월 또는 12월이면 한·미 정책금리가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정책금리 역전은 2007년 8월 이후 약 10년 만이다. 미국 금리인상은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됐던 2005년 8월부터 2년간 국내 증권시장에서 19조7000억원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기도 했다.

다만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정도의 대규모 자본 유출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자본 유출·입은 금리 차 외에도 환율에 대한 예상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면서 “높아진 국가 신용등급이나 외환건전성을 감안하면 대규모 외화 유출을 야기할 정도로 일방적인 원화 절하 기대가 형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가계부채다. 당장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더라도 미국 금리인상으로 국내 시장금리 상승세에 속도가 붙어 가계부채가 악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도 “국내 정책금리가 미국 금리와 동반 인상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중금리는 상승압력을 받을 전망이며, 가계 및 기업에 대한 대출금리도 오름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면서 “경기 호조 및 소득 증가를 동반하지 않은 채 미국 금리상승이라는 외부요인에 의해 대출금리가 높아지면 소비나 경기 위축 요인으로 작용하고, 가계 부실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이미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금융당국의 ‘대출 조이기’ 정책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월 한 달 동안에만 가계대출은 은행권과 비은행권을 합쳐 10조원이나 폭증했다. 올해 들어 증가폭이 가장 컸다. 한국은행이 분기별로 발표하는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 잔액은 지난 1분기 기준 1359조7000억원으로, 여기에 4월 가계대출 증가액(7조2000억원)과 5월 증가액을 더하면 1400조원에 육박한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 역시 숨가쁘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2.8%로 1년 전인 2015년 말에 비해 4.7%포인트 상승했다. 주요 43개국 가운데 세 번째로 빠른 속도로 가계부채가 증가했고, 경제규모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8위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금리 상승으로 대출금리가 높아지면 가계의 채무상환 부담이 증가, 재무건전성이 악화하는 것은 물론 소비 위축이 우려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대출금리가 각각 1%포인트, 3%포인트 오를 경우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이자비용을 계산한 결과, 이자비용이 308만원에서 각각 364만원, 476만원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DSR)은 38.7%에서 각각 40.4%, 43.9%로 상승했다.

취약가구의 상황은 더 심각해, 한계가구의 DSR 비율은 127.3%에서 각각 130.6%, 134.0%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부채 보유 가구 중 한계가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15.8%에서 16.8%, 19.5%로 늘어났다.

현대경제연구원 신유란 연구원은 “대출금리가 인상되면 부채 상환능력이 취약한 가구를 중심으로 위험이 크게 증가해 실물시장으로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단기간에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취약가구들부터 원리금 연체 및 실물자산 처분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주택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경우 부동산시장 불안정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출금리 상승으로 인한 가구의 채무상환 부담 증가는 가계지출 감소로 이어져 소비침체로 나타날 수 있다. 연구원 분석 결과 DSR이 5%포인트 상승할 경우 가계의 소비지출 증가율은 0.11%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치인 연 1.25%로 내린 뒤 1년째 이를 동결하고 있는 한은의 고민도 커지게 됐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미국 금리인상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혔지만, 한·미 기준금리 역전을 앞둔 상황에서 한은을 향한 기준금리 상승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은도 연준의 이번 금리인상에 앞서 3년 만에 ‘통화 긴축’ 신호를 보냈다. 이주열 총재는 5월 12일 “통화정책 완화 정도를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기회복세가 지속되는 등 경제상황이 뚜렷하게 개선될 경우’라고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2014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과거에도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됐을 때 한국도 곧 추격 인상에 나섰다.

그러나 금리인상 시점에 있어서는 고민이 커지는 분위기다.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리면 가계빚 부실화 가능성이 커질 뿐더러 자칫 어렵게 되살아난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도 있다. 그렇다고 기준금리 역전을 손 놓고 방치하는 것도 자금 유출을 고려한다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당장 기준금리를 급하게 올리지는 않겠지만, 머지않은 시점에 추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 정부의 경기부양책 시행을 감안하면 한은의 금리인상 시점은 내년 상반기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올해 11월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올해 국내 성장률과 물가가 예상보다 호조를 보이고 있어 7월과 10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성장률을 상향하며 인상의 명분을 쌓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수 회복세 약화와 가계부채 증가세는 미국의 점진적인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국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기준금리 인상 시 외부 요인보다는 국내 경제상황과 리스크 요인 분석을 통한 결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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