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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데스크 시각] 여성 장관 30%의 딜레마/이순녀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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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이순녀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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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과 단호함.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어제 새벽 귀국하면서 공항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장면을 보며 이 두 가지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것에 새삼 놀랐다. 장시간 비행에도 지친 기색 없이 밝은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선 강 후보자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응하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조건 없이 해야 한다는 소신을 조근조근한 말투로 명쾌하게 피력했다. 그렇다고 앞서 나가지도 않았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선 “현안에 대해서 공부를 더 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의 오랜 경험 덕일까. 지적이면서 여유 있는 애티튜드(태도)가 강한 인상을 안겨 줬다.

‘초대 내각 30% 여성 임명’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가 과연 어떤 여성 장관들을 발탁할지 관심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여성 장관 발탁은 이전 정부들에서도 야심차게 내세웠던 공약이었지만 기대한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여성 장관을 기용할 부처도 기껏해야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등 역대 정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지레 짐작해 버렸다. 그런데 외교부 장관이라니. 그것도 비(非)외시 출신에 여성이라는, 기존의 철옹성 같은 불문율 두 가지를 동시에 깨트리는 파격을 감행한 것에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충격을 받았다. 여성인 나조차 여성 장관의 범위를 그렇게 협소하게 가둬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끄럽지만 고백해야겠다.

강 후보자에 앞서 임명된 피우진 보훈처장(차관급)의 인선도 ‘사이다’급이긴 마찬가지다. 여성 헬기 조종사 1호, 암 수술 뒤 강제퇴역, 소송과 복직 등 파란만장한 역정과 더불어 대위 시절 사령관이 술자리에 여군을 보내라고 하자 전투복을 입혀 보냈다는 에피소드까지 알려지면서 ‘걸크러시’의 상징적인 인물로 급부상했다. 청와대 인사 브리핑 자리에서 “저는 애국가도 씩씩하게 부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씩씩하게 부를 것”이라고 말할 때 정말 멋져 보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닮고 싶은 선배가 생겨서 기쁘다’는 젊은 여성들의 고백이 봇물을 이룬다. 스스로의 힘으로 유리천장을 뚫은 그들의 존재가 이렇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만으로도 현 정부의 남녀 평등인식 지수는 수직 상승한 셈이다.

이쯤 되면 다음 여성장관 후보자들의 면면도 궁금해진다. 30% 할당을 충족하려면 18개 부처 장관중 아직 4~5명을 더 인선해야 한다. 역대 장관 모두가 여성이었던 여가부를 비롯해 복지부, 환경부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고, 외교부처럼 남성들이 독식해온 통일부, 노동부, 국토부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여성정치인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마도 이들이 입각한다면 피우진 처장이나 강 후보자 같은 감동은 주지 못할 것이다. 능력이나 자질 때문이 아니라 재발견이라는 측면에서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흙 속의 진주’를 찾기 위해 무리한 노력은 하지 않길 바란다. 진주인 줄 알았는데 그냥 흙이었던 경험을 이미 여러 번 하지 않았나. 정부가 30%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면 좋겠다. 임기 내에 남녀 동수 내각을 달성하겠다는 계획도 앞으로 가야 할 지향점으로서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어쩌면 ‘발탁’이 아니라 ‘배제’만 하지 않아도 여성 인재 풀은 차고 넘칠지 모른다.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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