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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금요 포커스] 디지털·인공지능 시대의 규제 혁신/성대규 보험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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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성대규 보험개발원장


‘내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아.’ 연인들의 언약처럼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미국 연방 수정헌법 제1조는 1791년 제임스 매디슨의 주도하에 제정된 후 200년 넘도록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어 종종 해석상 논란이 벌어진다. 2010년 연방대법원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물’도 수정헌법 제1조에서 말하는 ‘표현’으로서 보호받아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칼리아 대법관에게 동료 대법관이 농담을 건넸다. “스칼리아 대법관은 제임스 매디슨이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법 제정 당시 문구의 원래 의미를 중요시하는 스칼리아 대법관을 비꼬는 의미가 담긴 농담이었다. 이에 대해 스칼리아는 무뚝뚝하게 답했다. “아뇨, 나는 매디슨이 폭력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합니다. 수정헌법 제1조가 채택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폭력적인 표현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요?”

스칼리아는 표현이 폭력적이더라도 헌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2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계속 지켜야 할 명제로 보았고, 그 매체가 신문인지 소설인지 비디오게임인지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다. 주지하듯이 표현의 자유, 인간의 존엄성과 같이 사회 경제 환경이 변하더라도 그 본질은 유지되어야 할 것이 있는 반면 경제·금융법과 같은 기술적·전문적인 법규는 제정 당시 전제가 되었던 상황이 크게 변했는데도 적시에 개정되지 않으면 사회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유지해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을 판별하는 일은 법과 제도를 고안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숙제이다.

요즘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변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예컨대 ‘예금’이란 은행 점포에 들어가 창구에 돈을 맡기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통장을 교부받으며 필요하면 맡겼던 돈을 영업시간 내에 찾을 수 있는 금융상품이다. 그런데 점포가 없고 종이통장을 발행하지 않으며 영업시간도 제한 없는 은행이 등장하고 있다. 소비자가 새로운 형태의 은행을 더 편리하다고 느껴 선호하면서 법과 제도도 부지런히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예전에는 금융실명제에 따라 창구를 방문한 고객이 행원과 대면해 실명을 확인받아야 계좌 개설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분증 사본의 온라인 제출, 영상통화, 현금카드 등 전달 시 확인, 기존 계좌 활용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실명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됨에 따라 대면 절차 없이도 원하는 때에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보험 역시 전형적인 계약 체결의 모습은 보험설계사를 직접 만나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계약의 중요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는 등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각종 규제가 생겨났다. 상법과 보험업법은 보험사에 설명의무를 부과하고, 설명을 이해하고 계약을 체결한다는 취지로 보험계약자의 서명을 받게 했다. 심지어 보험계약자가 계약을 이해하고 있는지 보험사가 전화해 확인하는 제도인 ‘해피콜’도 있다.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보험에서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두꺼운 책자였던 약관이 전자서적 형태로 대체되고 있고 보험계약자가 주도해 온라인으로 보험가입을 할 수 있는 비대면 보험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보험업법령이 개정돼 전자서명으로도 보험계약자의 확인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적은 온라인 보험은 해피콜을 생략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계약자 보호를 위한 설명의무는 유지하되 그 확인방법은 기술 발달에 맞추어 바꾸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보험권에서 제도가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생명보험과 상해보험은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사람인 경우 피보험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그 방식은 상법에 따라 아직도 ‘서면’으로 한정된다. 도덕적 해이 방지라는 목적은 중요하다. 그러나 전자서명이나 공인인증서 방식의 확인도 가능하고 홍채나 정맥 인식 등 본인의 동일성 여부를 더 정확히 인식할 수단이 개발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제도 혁신은 늦다. 지난 국회에서 이런 문제점을 개선할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디지털 시대의 생활화에 걸맞게 우리의 사고도 변화하고 법과 규제도 적시에 혁신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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