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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우리’를 붙들고 해야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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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양경언의 시동詩動걸기

신용목 시 ‘공동체’
현대시(2017년 5월호)

여름의 초입에 서서, 계절만 변화한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촛불을 밝혔던 광장의 시간을 피하지 않는다면 우리 삶의 국면을 바꾸는 일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깨달음을 이웃과 나눌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는 생각도 그 곁에 둔다. 그러나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기까지 넘어야 했던 숱한 굽이굽이를 떠올릴 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처 헤아리지 못한 얼굴들을 감히 겹쳐 그려볼 때, 아직도 합의되지 않은 가치들과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이 곳곳에 있음을 실감할 때, 비단 다행과 보람에서 비롯된 마음 상태만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라는 말을 붙들고 해야 할 일이 많다. 하지 말아야 할 일 역시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왜 여전히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붙들 수밖에 없는지, 끈질기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의 이름은 ‘죽은 자의 이름’을 가져다 썼을 때야 쓸 수 있는 것이라 여기는 어느 시의 일부분을 읽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달라고 할까 봐./ 꽃 핀 정원에 울려퍼지다 그대로 멈춰버린 합창처럼, 현관의 검은 우산에서/ 어깨에서…빗물처럼/ 뚝뚝,// 낮은 처마와 창문과 내미는 손// 위에서// 망각의 맥을 짚으며/ 또,/ 보고 싶다고…보고 싶다고…/ 울까 봐./ 그러면 나는 멀리 불 꺼진 시간을 가리켜 그의 이름을 등불처럼 건네 주고,/ 텅 빈 장부 속에// 혼자 남을까 봐. 주인 몰래 내어준 빈 방에 물 내리는 소리처럼 떠 있는// 구름이라는 물의 영혼, 내 몸속에서 자라는 천둥과 번개를 사실로 만들며// 네 이름을 훔치기 위해// 아무래도 죽음은 나에게 눈을 심었나 보다, 네 이름을 가져간 돌이 비를 맞는다./ 귀를 달았나 보다, 돌 위에서 네 이름을 읽는 비처럼,/ 내가/ 천국과 지옥을 섞으며 젖어도 되겠습니까?/ 저기/ 공원을 떠나는 여자의 붉은 입술처럼, 죽음을 두드리는 모든 꽃잎이 나에게 기도를 전하는…/ 여기서도// 인생이 가능하다면, 오직 부르는 순간에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사랑이 가능하다면,/ 죽은 자에게 나의 이름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그를 내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신용목, ‘공동체’ 부분)

‘나’는 쉼표와 마침표, 말줄임표와 함께 자주 망설임의 시간을 갖는다. 이 머뭇거림의 틈새로 지금은 사라진 ‘너의 이름’이 있다. 나의 불편 없는 숨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가 저 자신 호흡의 자리를 내주었나. 지금은 사라진 너의 이름을, ‘내’가 텅 빈 장부로 남겨지지 않기 위해 품는 일은 과연 타당한가. 시인은 이 모든 질문을 살아 있는 자가 감내해야 할 책무로 삼는다. 어떤 죽음들 위로 내 이름의 싹이 틔워지는 순간을 우리는 너무 많이 겪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싹의 무게가 “나에게 기도를 전하는” “모든 꽃잎”의 무게에 비할 바 못 되므로, ‘우리’에겐 ‘우리’라는 이름을 피할 길이 없다. ‘우리’를 붙든 채 해야 할 일이 많다. 광장에서 얻은 힘을 흉터와 갈등으로 얼룩진 ‘우리’라는 이름을 살뜰히 살피는 힘으로 끝내 전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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