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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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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영하 소설집 ‘오직 두 사람’

‘세월호’ 이후 작품들 어둡고 답답

“이번 대선에서는 투표했어요”


한겨레

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문학동네·1만3000원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김영하가 단편 ‘아이를 찾습니다’로 2015년 제9회 김유정문학상을 받고 쓴 수상소감의 일부다. ‘아이를 찾습니다’는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를 등장시킨 소설인데,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014년 겨울에 발표되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구상한 것이 ‘세월호’가 있기 여러 해 전이었으며 세월호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는데, 그럼에도 세월호 사태를 연상시킴은 어쩔 수 없었다. 수상소감에 쓴 ‘그 이후’라는 표현 역시 세월호 이후를 가리킨다는 느낌을 주었다.

“여러분도 아이가 있잖아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대형마트에서 세 돌을 갓 지난 아들 성민을 잃은 직후 미아 찾기 방송에 무심한 채 쇼핑에만 열심인 사람들을 향해 성민 엄마 미라가 속으로만 부르짖는 이 말에서도 세월호 유족의 안타까운 호소가 겹쳐 들린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이후 7년 만에 나온 김영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에는 ‘아이를 찾습니다’를 비롯해 중단편 일곱이 묶였다. “단편을 쓸 때에는 신인 시절의 느낌을 맛볼 수도 있고 기분전환의 효과도 있어서 앞으로도 단편은 꾸준히 쓸 생각”이라고, 24일 오후 연희동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말했다.

한겨레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을 낸 작가 김영하. “젊었을 때는 내 문학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내 소설이 가장 잘 이해되고 읽히는 건 한국이라는 생각으로 모국어와 모국의 독자들에게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록작 일곱을 발표 순으로 보자면 ‘아이를 찾습니다’가 가운데에 해당하고 그 앞과 뒤로 세편씩이 놓인다. 앞서 발표한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의 주인공이 각각 작가와 출판사 편집자, 출판사 사장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뒤쪽 작품들에는 작가나 출판 관련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대신 분위기가 훨씬 어둡다. 자신의 삶을 희생해 가며 평생을 ‘아빠 딸’로 사는 인물의 이야기인 표제작, 사랑하는 여자의 불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남자의 이야기인 ‘인생의 원점’도 그렇지만, ‘신의 장난’은 그중에서도 가장 암울한 작품.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의 하나로 방 탈출 게임에 참여한 젊은 남녀 넷이 아무리 해도 탈출할 수 없는 방에 갇힌다는 설정부터가 어둡고 답답하다. 셜록 홈스 테마 방에서 며칠 동안 갖은 고생을 겪다가 가까스로 방을 벗어나지만, 그렇게 해서 그들이 이른 곳은 연쇄살인범 지하 감옥을 테마로 한 또 다른 감옥. “지루하고 재미없고 으스스한 방 탈출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네 남녀에게 출구는 끝내 주어지지 않는다. ‘탈출할 수 없는 탈출 게임’이라는 설정이 청년 세대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유비임은 물론이다.

‘신의 장난’에서 방에 갇힌 이들을 지켜보는 신과 같은 누군가의 존재, “인생이라는 법정에선 모두가 유죄야”(‘최은지와 박인수’)와 같은 말, 그리고 순간의 선택이 생사를 좌우하고 행복과 불행을 가른다는 ‘인생의 원점’의 메시지 등에서는 어쩐지 인간사를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냉정한 시선이 느껴진다. ‘아이를 찾습니다’의 부부가 잃어버렸던 아이를 무려 11년 만에 되찾지만 그 뒤의 상황이 기대했던 대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설정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유괴범을 친어머니로 알고 성장한 성민은 정작 친부모의 집에 와서는 “마치 이번에야말로 유괴를 당했다는 듯한 얼굴”을 할 뿐이다. 그렇게 성장한 성민이 어느 날 문득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그가 떨구고 간 갓난쟁이 사생아가 아버지 윤석의 보호 아래 들어온다는 결말이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인지 아니면 최소한의 낙관적 전망을 향한 열림인지 모호하다. 삶이 그런 것처럼.

2000년 총선을 앞두고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던 작가는 이번 대선에서는 투표를 했다고 밝혔다. “그때는 그래도 그런 치기 어린 소리를 할 수도 있는 좋은 시대였지만, 알다시피 지난 10여년 사이에 그런 여유가 사라졌어요. 지금 대통령은 정권 초기에 일을 잘 하시고 모든 말씀이 올바르니까 이렇게 한 10년 가면 나 같은 사람이 다시 삐딱한 말을 해도 되는 날이 오겠죠.”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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