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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서울대학 나왔습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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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책거리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네요. 2005년 9월 평양에서 연 ‘2005 남북여성통일행사’ 취재를 갔다가 북한 여기자를 만났습니다. 엘리베이터에 단둘이 타 서로 가벼운 눈인사를 나눈 직후 그가 묻더군요. “이 기자도 서울대학 나왔습네까?” 저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제 모교도 서울대 못지않게 무척 아름답고 좋은 대학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금 기분도 나쁘고, 되물어주기를 바라나 싶어 어느 대학 나왔냐고 똑같이 질문했지요. 용수철 튀듯 빠른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김일성종합대학 나왔습네다.” 그가 어깨를 으쓱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자랑스럽게 답했다는 느낌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북한 사정에 밝은 선배 김보근 기자에게 이 일을 말해주었더니, 북쪽의 학벌주의는 남쪽보다 훨씬 심할 거라더군요. 남북교류 현장에서 보면 북한 참사 중에서 김일성대·김책공대 출신 아닌 이들을 만나기 어렵고, 그 대학들이 당 간부와 엘리트 양성소라는 것이죠. 북에서도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이 거세고 과외도 많이 시킨다고 했습니다. ‘고난의 행군’ 때는 월급을 받지 못한 교사들이 과외수업에 나섰고, 수재들이 다니는 고급학교들도 따로 있다 합니다. 남북 모두 엘리트 대물림이나 시험, 학벌폐해 양상은 뚜렷한 것 같습니다.

신간 <시험국민의 탄생>(이경숙 지음, 푸른역사)을 읽으면서 내내 어린 시절 치르던 시험을 떠올렸습니다. ‘사당오락’이라며 잠을 줄이라던 선생님 말씀, 학력고사의 배치표를 보고 어느 대학 어느 과를 가면 좋을까 따져보던 일 등등. 그땐 당연한 줄 알았지만, 지나고 보니 인재 선발에서 시험이 최선일까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이제 곧 새 교육정책이 수립될 텐데, 모쪼록 ‘교육’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약자를 위협하는 ‘시험’을 근본부터 다시 고민해주길 바랍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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