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삶과행복팀 선임기자
피를 빨아먹는 게 모기의 모성애라는 얘기도 있다지만, 그래도 모기는 성가시고 아주 간혹 위험하다. 가려움쯤이야 성가신 일로 넘겨도 말라리아, 지카 같은 병을 옮기는 건 위험한 공중보건 문제다. 그래서 모기를 쫓거나 피하려는 가벼운 노력도 있지만, 병원체를 옮기는 모기 종을 물리치려는 치열한 노력도 계속된다.
아예 모기의 유전자를 바꾸자는 건 그런 시도의 첨단에 서 있다. 2010년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영국의 생명공학기업이 카리브해의 영국령 케이맨 제도에서 유전자 변형 모기들을 야생에 풀어 뎅기열 매개 모기 종을 퇴치하려는 실험을 벌였다.
퇴치 전략은 이렇다. 수컷 모기의 유전자를 변형해 야생에 푼다. 이 수컷이 야생의 암컷과 짝짓기를 하면 후손 유충은 생존에 필요한 특정 항생물질을 생성하지 못해 죽고, 그래서 세대를 거듭할수록 모기 수가 줄어들도록 했다. 당시 모기 수가 크게 줄었다는 발표도 있었으나 야외 실험 전에 환경영향평가가 충분했는지는 논란거리가 됐다.
더 적극적인 시도는 ‘유전자 드라이브’라는 말과 함께 2015년 등장했다. 모기 번식을 막을 특정 유전자가 후손에게 우선적으로 널리 유전되도록 촉진하는 기술이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은 듯했다. ‘수출 드라이브’ 같은 말에 담긴 의미와 비슷할 듯하다. 예컨대 암컷이 태어나는 걸 막는 유전자를 모기 후손들에게 널리 퍼뜨릴 수 있다면 그 종의 개체는 점점 줄고 결국엔 위험한 모기 종을 퇴출할 수도 있다는 구상이다.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NAS)가 지난해 이와 관련한 평가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를 보면, 유전자 드라이브는 일찍이 1960년부터 어떤 생물종을 개체군 수준에서 보존하거나 퇴치하는 유전공학적 관리 기술과 전략으로 연구되었는데 실효성이 특히 주목받은 것은 2013년 무렵 유전체 편집 기술인 ‘유전자 가위’가 등장한 이후였다. 실험실에선 모기나 초파리에 유전자 가위 시스템을 심어 특정 유전자를 확산하는 기법이 개발됐다.
유전자 드라이브는 위험한 야생은 억제하고 멸종위기 야생은 보존하는 전략이 될까? 기대도 높지만 우려도 깊다. 얽히고설킨 생태계를 뜻하지 않게 교란할 가능성은 한창 논란 중이다. 현재로선, 지난해 유엔 생물다양성 회의나 미국 과학아카데미 보고서가 밝혔듯이 불확실성과 우려도 있지만 연구 가치 또한 있으므로 실험실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논란 중에 다른 성격의 연구도 새롭게 눈길을 끌었다. 실험실이 아니라 실제 야생에서도 유전자 드라이브는 힘을 발휘할까? 야생에선 돌연변이가 출현해 유전자 드라이브에 대한 저항성도 또한 생기지 않을까?
이런 물음과 관련한 연구결과가 최근 또 하나 더해졌다. 미국 생물학 연구자들은 유전자 가위 기법을 이용해 거짓쌀도둑거저리라는 병해충의 개체수를 줄이는 유전자 드라이브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몇 세대 뒤에 자연적으로 돌연변이가 생겨나 유전자 드라이브 전략을 무력화하는 저항성이 생겨났다고 학술지(<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변이가 작더라도 드물게 출현하더라도 일단 생긴 변이는 야생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것으로 분석된다는 점이다. 말라리아, 뎅기열, 지카 같은 질환의 퇴치를 목표로 연구돼온 유전자 드라이브 전략은 생태계 교란 가능성이라는 딜레마를 안고서 앞으로도 여러 논의를 거칠 것이다. 이제 유전자 드라이브 연구 전략이나 환경영향평가 논의에서는 첨단 과학의 수동적 대상으로 여겨질 법한 야생이 실은 능동적 적응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심각하게 고려될 듯하다. 야생의 진화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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