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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특파원 칼럼] 반일에 대해서 / 조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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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조기원
도쿄 특파원


한국 대통령 선거를 다루는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서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단어가 있었다. ‘반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인 지난해 연말 일본의 한 방송사가 한국 대선이 다시 치러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력 후보들을 분류했다. 문재인 후보는 ‘약간 반일’, 이재명 성남시장은 ‘반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약간 친일’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일본에 온 3월 이후 한국 대선이 확정되면서 일본 언론들의 반일 딱지 붙이기는 거의 매일 볼 수 있었다. 지난달 초에는 <요미우리신문>이 당선 유력 인물로 떠오른 문재인 당시 후보에 대해서 ‘일본을 모르는 반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뒤 <산케이신문>은 ‘반일 정권의 충격’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냈다.

일부 일본 언론들이 반일에 민감한 이유에는 안보 불안감도 작용한다는 해설이 있다. 한국에서는 진보 쪽으로 분류됐던 후보들이 집권하면 일본과 멀어지면서 일본이 위협이라고 느끼는 북한과 가까워지려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는 이야기다. 일본이 새 정부 출범 이후 가장 관심이 있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두 회의적인 태도였지만, 진보 후보로 꼽혔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북’ ‘반일’이라는 딱지가 유독 많이 붙었던 이유에는 일본의 안보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반일 앞에 대부분 친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지적하는 일본인들도 있다. 실제로 반일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일본 언론 기사에서는 한국 새 정권이 북한에 유화적이 되지 않겠느냐 또는 한국 새 정부 출범으로 대북 포위망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내용을 실은 곳이 많다. 물론 모든 일본 언론이 반일 딱지를 쓰지는 않았다.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한-일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면 등에서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여전히 반일이라는 단어에 저항감을 느끼는 이유는 반일이 일본에 반대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가 계속 좋기만 하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나라이기 때문에 의견이 다르고 갈등이 있는 것이 사실 자연스럽다. 누군가 나에게 반대 의견을 내놓고 나와 갈등을 빚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서로 의견이 부딪히고 때로는 갈등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인류 보편의 가치에 부합하느냐 않느냐 같은 가치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 반대하고 누군가와 더 친근하다는 것 자체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국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일 간의 관계 개선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가 일본을 3박4일 일정으로 다녀가면서, 일본에 정상 외교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셔틀외교’를 제안했다. 국교 수립 뒤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는 일단은 소강상태에 들어선 듯 보인다. 일본 언론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도쿄특파원 출신이며 한일의원연맹에서 활동한 ‘지일파’라며 기대감을 표시하는 보도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반일 딱지를 붙인 보도는 잦아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서로의 이견과 갈등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관계 개선은 그리 쉽사리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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