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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만약 엄마가 사라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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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한겨레

엄마 사용법
김성진 글, 김중석 그림/창비(2012)

필립 케이(K) 딕이라는 에스에프(SF) 작가가 있다. 그의 원작을 바탕으로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등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의 작품은 무한 확장되는 상상력과 가상의 세계가 일품이지만 좀 거칠다. 김성진의 <엄마 사용법>을 읽었을 때 필립 케이 딕이 생각났다. 전개도 무난하고 등장인물도 평면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화는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발칙한 대목은 ‘엄마가 사라진 시대’라는 대전제였다. 어떤 이유인지 주인공 현수는 엄마가 없다. 심지어 엄마를 가져본 적도 없다. 아빠와 할아버지는 버젓이 있는데 말이다. 현수가 사는 가까운 미래에는 생명 장난감이 있다. 강아지, 공룡, 고릴라 등은 모두 생명 장난감으로 대체되었다. 조립을 하면 살아나지만 마음은 없다. 생명 장난감에게 마음이 생기면 불량품으로 취급되어 바이오 토이사의 사냥꾼들이 회수하여 폐기한다.

현수는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는 ‘엄마 장난감’을 갖고 싶어 조른다. 마침 출장 때문에 현수를 돌볼 수 없게 된 아빠는 엄마 장난감을 사준다. 한데 장난감을 조립하다 손을 베어 피 한 방울이 장난감으로 스며든다. 그 때문인지 이상하게 엄마 장난감은 제 역할을 못한다. 엄마 장난감 광고에 따르면, 엄마는 같이 놀아 주고, 옷도 입혀주고, 맛있는 간식도 차려 주고 아이들이 원하는 건 다 해줘야 한다. 그런데 현수의 장난감 엄마는 아침에 깨워주지도 않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주지도 않는다. “뭐든지 내가 하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게 엄마야. 아침엔 제일 먼저 일어나서 밥 차려놓고 날 깨워 줘야지. 그게 아니면 엄마가 왜 필요하냐?”라는 친구의 말처럼 현수의 장난감 엄마는 불량품이 틀림없다.

아마 눈이 밝은 독자라면, 이쯤에서 궁금해할 것이다. 왜 가까운 미래에 엄마가 사라졌을까. <엄마 사용법>은 본격 에스에프는 아니다. 다만 에스에프적인 설정을 가져왔을 뿐이라 미래 사회에 대한 질서정연한 세계관이 작품 안에 설계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빈자리가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만들어준다.

아마도 현수가 사는 시대에는 진짜 엄마와 장난감 엄마가 공존하는 것 같다. 엄마와 아이들은 서로의 필요에 따라 진짜 엄마 혹은 기계인 장난감 엄마를 고를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설정을 통해 동화는 진짜 엄마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하도록 이끈다. 동화의 대전제가 발칙했던 것처럼, 동화가 들려주는 경고도 묵직하다. 만약 엄마들이 매니저처럼 아이들을 관리하려 든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엄마라는 존재는 사라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의 관리가 아니라 엄마의 마음이라고 말이다. 초등2~4학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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