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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문화 현장] 함께 추는 춤 / 박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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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박보나
미술가


2년에 한번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에서 열리는 국제미술전, 베니스 비엔날레가 지난 10일 개막했다. 이번 57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비바 아르테 비바'(Viva Arte Viva). ‘예술 만세'라는 뜻이다. 전시는 나라별로 기획한 국가관 전시와 총감독이 큐레이팅한 본전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주최 측은 국가관 전시와 본전시에 참여한 작가를 각각 한 명씩 뽑아 황금사자상을 주고, 본전시에 참여한 젊은 작가 중 한 명에게 은사자상을 수여한다. 올해의 은사자상은 전시장 외부 정원에 설치한 사운드 작업, <공공 정원을 위한 구성>을 선보인 이집트 출신 작가 하산 칸에게 돌아갔다.

하산 칸은 이번 수상작이 낯설면서도 친밀한 타자와의 평행적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쉽게도 나는 아직 이 작업을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2011년 뉴욕 뉴뮤지엄 트리엔날레에서 칸의 다른 작업, <보석>을 본 적이 있다. <보석>은 6분짜리 영상 작업으로, 작게 꿈틀거리는 빛으로 시작한다. 이 작은 빛은 점점 모여 아름답게 빛나는 발광성 물고기가 되고 그 물고기는 이집트 전통 리듬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로 바뀐다. 이때 두 남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스피커 옆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주거니 받거니 춤을 춘다. 나는 이 작품이 상당히 황홀하고 감동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둘의 춤이 자연스럽게 ‘아랍의 봄’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한겨레

하산 칸 <보석>, 6분30초,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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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은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중동과 북아프리카로 확산된 민중 봉기를 가리킨다. 이 반정부 민주화운동은 2011년 이집트에서 30년 동안 지속된 독재 권력을 종식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집트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의 이름을 따서 ‘코샤리 혁명’이라고 불리는 이 민주화 시위는, 박근혜 부패정권의 탄핵을 이끌어낸 우리의 촛불시위와 닮아 있다.

하산 칸의 비디오에서 춤을 추는 두 남자는 다른 사회적 계층과, 역사적 흐름 속의 다른 시간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1980년대 이집트의 B급 영화 속 택시운전사의 전형적인 복장처럼, 갈색 가죽재킷을 입고 다듬지 않은 콧수염을 달고 있는 남자는 노동자 계층과 과거로 연결된다. 대학생 느낌이 나는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는 젊은 남자는 지식인 계층과 현재를 표현한다. 다른 부류의 사람 둘이 과거와 현재라는 흐름 안에서 어우러져 서로의 움직임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이 다정하다. 이들의 춤사위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촛불을 들었던 이집트의 코샤리 혁명이나 우리의 촛불시위와 겹치면서 감동을 준다.

지난 추운 겨울,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직업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고 부패정권의 척결을 외쳤다. ‘낯설면서도 친밀했던’ 우리는 그렇게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우리의 아름다웠던 춤사위는 결국 박근혜 정권의 탄핵을 이끌어냈고 지금의 새로운 정권을 열 수 있었다. 이전 정부가 몹시 실망스러웠던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큰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있다.

기대가 크고 애정이 깊은 만큼 앞으로 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것이며,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가 더 많이 생길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하산 칸의 영상 속의 두 남자처럼 우리가 새로운 역사의 줄기 속에서 여전히 함께 춤추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이 추는 춤은 상대방의 동작을 지켜보면서, 기다리고, 이해한 후,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증오와 분열을 동력으로 삼았던 박근혜 정권의 지난 시간과 달리, 서로의 아픔을 다독이고, 내 몫을 같이 나누며, 열린 마음으로 다른 목소리와 대화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반짝이는 ‘보석’ 같은 춤을 계속 함께 출 수 있지 않을까?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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