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8 (월)

"세월호 이후 한국은 무간지옥 같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7년 만에 소설집 '오직 두 사람' 펴낸 김영하

매일경제

어떤 세월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하게 만든다. 김영하(49)가 7년 만에 소설집 '오직 두 사람'(문학동네)을 냈다. 아이를 유괴당했거나, 첫사랑을 잃었거나,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는 딸의 이야기 같은 어둡고 냉소적인 소설이 가득하다.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가 넘치는 글을 써온 작가가 변한 것은 세월호 때문이었다.

2014년 4월, 그는 뉴욕타임스 국제판에 칼럼을 쓰고 있었다. 이 참사를 다루면서 "이 시간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라고 썼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많은 것이 바뀌었고, 그의 작품도 변했다.

2년 전 부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주한 그와 25일 연희동 자택 근처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세월호 사건도 끔찍했지만 그 이후에 국가가 제대로 된 애도를 금지한 건 마치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 같았어요. 매장(埋葬)을 국가가 금지하는 이야기인데, 인간 사회가 적절한 매장과 애도를 발전시켜온 건 그것이 치유의 과정이기 때문인데, 그걸 금지한거죠."

신작에 실린 '신의 장난'은 입사 면접이라는 명목으로 지하의 방에 갇혀 고문을 당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다. 방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그들에게는 또 다른 방이 기다린다. '아이를 찾습니다'에선 유괴당한 아이만 찾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줄 알았지만, 정작 찾은 뒤엔 더 큰 문제가 찾아온다. 이것이 김영하의 메타포다.

그는 "세월호 이후의 한국 사회는 무간지옥 같았다. 소설가는 어떤 격변이 좀 지나간 이후에 돌아보는 사람들이지 현장에서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끔찍한 사고 이후 한동안 소설을 쓸 수 없었고, 그 절망감이 녹아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귀걸이를 한 노란 머리의 소설가로 데뷔한 지 22년이 흘렀다. 젊은 작가의 대표주자로 각광받던 그는 이제 단정한 옷차림의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변했다. 그의 목표는 '지속 가능한 소설가'다. "20대의 예술가들은 대부분 자기를 입증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예술가로 튀고 사람들이 알아보는 건 불편해요. 어딜가도 잘 스며들고 경계 없이 평범한 시민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태가 좋아요. 소설 속에서 작가는 충분한 모험을 하니까, 그걸로 족하죠."

시칠리아, 밴쿠버, 뉴욕, 부산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그는 늘 유랑하는 작가였다. 그는 "군인 아버지를 따라 1년마다 이사를 하다 보니 한 곳에 2년만 살면 슬슬 지겨워진다"면서도 "이게 좋지 않은 게 장편은 한 곳에 2년 이상 눌러앉아야 쓸 수 있으니 여러 충동이 싸우는 상태가 된다"고 했다.

"소설은 제 성향과 반대 상태가 돼야 쓸 수 있어요. 무료하고 지루하고 약간 우울한 상태가 돼야 해서 좀 힘들죠. 날씨 좋은 날, 소설은 잘 안 써져요. 그래서 커튼으로 작업실을 다 막아둡니다. 정원의 꽃을 가꾸고 있는데 이게 참 작가에게 좋지 않아요. 소설 쓰기는 어렵고 긴 과정인데 꽃은 심으면 금방 예쁜 결과가 나오거든요. 위험한 취미죠."

그는 학생들을 만나는 강연에도 적극적이고, 2014년에 낸 산문 3부작 '보다' '말하다' '읽다'를 통해서도 청년들에게 소설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말을 건넸다. 그의 관심이 늘 20대인 이유는 뭘까. 그는 "20대는 늘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세대였는데 최근 주요 독자층이 30·40대로 올라갔다. 주거의 문제 때문이다. 고시원에서 원룸으로 옮겨 다니는 이들에게 책은 사치품이다. 그래서 팟캐스트도 하고, 강연도 하며 그들을 만난다. 작가는 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 또한 문학적 경험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4년 이상 장편을 발표하지 않은 그는 쓰려고 모아둔 소설이 서랍 안에 많이 있다고 했다. "그동안의 한국은 주거와 직업의 불안정성이란 문제가 보편화된 시기였어요. 지금처럼 전환점이 모색되는 시점에 과거를 돌아보는 소설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2000년대를 돌아보는 소설 작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영하 소설의 2막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그 세계는 이전보다 더 넓고, 여유 있고, 깊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