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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숙선 명창(68)은 사실 멋쟁이다. 지난 23일 오전 약속 장소였던 서울 정동극장에 그녀는 세련된 카키색 스커트와 하얀 재킷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목소리는 무척 얇고 가냘펐다. 일상 속 안 명창은 다부지게 쪽 찐 머리와 한복차림, 객석이 떠나가라 우렁찬 소리로 우리를 휘어잡던 평소 무대 위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한국을 대표하는 판소리 명창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국내를 넘어 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온 '국악계의 프리마돈나' 안 명창이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았다. 소리인생 60년을 기념한 공연을 오는 27일 클래식전용공연장 롯데콘서트홀에서 갖는다. 이곳에서 오르는 사실상 첫 정식 국악공연이다.
-데뷔 60주년의 의미가 궁금하다.
▷여덟 살 때 고향 남원에서 소리를 시작했어요. 집안 어른들께서 귀엽게 보시곤 데리고 다니며 잠깐씩 정식 무대에 세우셨죠.
-대금산조 인간문화재인 외당숙, 판소리 인간문화재인 외삼촌, 가야금 명인인 이모까지…. 국악 명가에서 나온 신동이셨나 보다.
▷여덟 살에 소리의 의미를 어찌 알았겠어요. 지금도 그걸 몰라서 소리를 부여잡고 있는데…. 그저 시키니 했는데 뜻을 몰라서 춘향가 중 이도령이 춘향에게 "춘향아 내가 왔으니 정신차려라" 하는 대사를 "점심 차려라"인 줄 알고 흉내 내고 그랬죠.
-클래식, 재즈, 힙합 등 다양한 장르와 판소리의 컬래버레이션을 지난 수년간 적극 이어오셨다.
▷난 음악을 다 좋아해요. 모든 박자는 사람 사는 데서 나왔기에 다 연결이 되죠. 서태지의 노래를 듣다 보면 중간에 국악이 나오고 어떤 대목에선 판소리와도 비슷해져요. 참 진지하고 솔직하며 멋있죠. 요즘 케이팝 속 랩들도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들이에요.
-언제부터 국악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셨나.
▷깨달은 건 서른 살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하면서부터다. 20대 시절 낮엔 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 소리공부를 하고 밤마다 워커힐호텔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국악 공연을 했어요. 창극단에서 소리꾼으로 무대에 서고 나서야 판소리가 사람 사는 모습을 어쩜 그리 잘 그려냈는가 깜짝 놀라게 됐죠. 그때부터는 하루 10시간씩이고 골방에 박혀 벽을 보고 연습만 했어요. 난 어떤 일에 집중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모든 걸 거는 성격이라, 만약 소리를 안 했다면 돈을 좀 벌었을 거예요.(웃음)
2002년 `성춘향` 공연 모습. [사진 제공 = 국립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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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전 고생이 많으셨겠다.
▷매일 밤 나는 공연을 가고 남편은 신촌 먹자골목에서 순댓국밥 장사를 했어요. 남편이 제가 음악 하는 걸 워낙 좋아했어요. 어린 시절 진주에서 제 공연을 보고 보낸 팬레터로 만난 사이죠.(웃음)
-창극단에서 주역만 도맡으시고 선풍적 인기를 끌며 '국악계 프리마돈나'란 별명도 얻으셨다.
▷'돈나'인지 뭔지….(웃음) 1986년 전국명창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아 '명창' 칭호를 받은 게 제일 기억에 남죠. 젊은 시절 제가 자그마해서 수궁가 토끼를 하면 다들 빼닮았다며 귀여워해 주시고 심청을 하면 손수건을 가져와 울어주셨어요. 이런 칭찬도 없었으면 골방에서 계속되는 고된 훈련을 이기지 못했을 거예요.
-수많은 유수 해외 무대에도 서셨다. 인상 깊었던 순간은.
▷88올림픽 끝나고 정부에서 한국을 알리려 유럽 7개국, 12개 도시에 판소리 춘향가 투어를 마련했어요. 대여섯 시간 완창 끝까지 자리를 안 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감상하는 그네들 모습에 깜짝 놀랐죠. 번역도 없이 줄거리만 보여줬는데. 영국 에든버러축제에서 4명의 다른 명창과 함께 판소리 다섯바탕 완창을 했던 건 판소리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2003년)로 이어져 뜻깊었죠.
-대여섯 시간에 달하는 가사를 도대체 어떻게 다 외우시나.
▷산에 들어가 100일씩 날마다 판소리 한 바탕을 연습하는 백일공부를 수없이 했죠. 가사가 달달 오토매틱으로 나오게끔…. 야속하게도 며칠만 노래 안 하면 가사가 안 나와버려요. 꾀 부리지 말고 머슴처럼 묵묵히 하는 수밖에. 하면 할수록 내 소리가 내 맘에 안 와닿기도 하고요. 소리꾼이 타고난 고난의 길이여. 명창 소리가 저 모양이냐 할까 봐 끝없이 연습을 했죠.
-판소리 다섯 바탕(수궁가·심청가·춘향가·흥부가·적벽가)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은.
▷춘향가가 제일 좋아요. "당신 부인한테 누가 와서 수청들라 하면 되겠어!"라며 바락바락 대드는 가사를 보세요. 그 시절 여자가 이런 권리를 부르짖는 모습이 너무 재밌어요.(웃음)
-건강 비결이 궁금하다.
▷죽기 살기로 운동을 해요. 언제든 걸을 수 있는 야트막한 산 옆으로 이사도 갔죠. 양념 범벅, 지지고 볶은 음식은 피하고 쓰고 맛없는 것만 찾아 먹어요.
-남은 목표는.
▷요즘 애들이 피아노 바이올린은 다 해도 국악은 참 몰라요. 어릴 때 들어놔야 어른이 돼서 국악을 찾아 듣는 귀가 생겨요. 어떻게든 어린애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국악 노래와 장단을 만들어보려 노력 중이에요.
공연은 27일 롯데콘서트홀.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흥부가 중 '눈대목', 각종 가야금병창과 민요를 선보인다. 안 명창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을 거쳐 현재 남원춘향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오신혜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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