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과잉시대이다. 용어 사용의 과잉이고 정책도 과잉이다. 모든 사업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갖다붙이지 않으면 속된 말로 '얘기'가 되지 않는다. 한국과 러시아를 잇는 파이프라인(PNG) 개발로 북극항로를 개발해야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산 한약재 고품질화도 4차 산업혁명과 연계시켜 말한다.
모든 산업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주역을 자처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이 있는 분야만 해도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3D 프린팅,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재료과학, 에너지 저장, 양자컴퓨터 등 다양하다. 여기에 얼핏 연관이 없어 보이는 건설산업과 예술 분야 등도 4차 산업혁명이 핵심을 자처한다. 정부 부처도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관련한 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뒤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도 있지만 이 기회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꿍꿍이'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대통령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 설치를 내세웠고, 이미 청와대 정책실에 4차 산업혁명 대응 조직으로 과학기술보좌관을 신설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4차 산업혁명은 실체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3차와 4차 산업혁명에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같이 혼란한 상황에서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파악하고 개념은 어떻게 정립하면서 사용하는지 궁금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2016년 1월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Mastering the Forth Industrial Revolution)'라는 주제로 각국 정상의 토의가 이뤄지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당시 다보스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경제, 사회, 인류의 행동양식에 초래할 변화에 대해 논의됐으며,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물리적, 생물학적 영역의 경계가 없어지면서 기술이 융합되는 것이 핵심 목표라고 했다. 사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다보스포럼에서 새롭게 창조됐다기보다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미국의 'USA 제조업의 부활' 등의 개념으로 여러 해 전부터 회자되던 용어였다.
4차 산업혁명에 가장 관심이 뜨거운 나라가 한국이고 이 용어는 한국에서만 사용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꼭 맞는 것 같지는 않다. 구글 트렌드를 검색해보면 영어 'the Forth Industrial Revolution'이라는 용어는 거의 검색되지 않는다. 하지만 'Industry 4.0'이라는 용어는 독일 이탈리아 인도 등 국가를 중심으로 상당히 검색되고 있다. 한국어 '4차 산업혁명'의 검색량은 두 용어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점을 보면 '4차 산업혁명'이든, '인더스트리 4.0'이든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변화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 바둑대국이라는 인류사적 대사건을 목격했다. 알파고는 이제 중국의 커제 9단과 대국에서 한 단계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면서 더 이상 인간과 대결은 의미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부존자원도 없고 자본축적도 많지 않은 우리나라가 새로운 흐름을 놓치지 않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 과잉현상이 낫다고 본다. 우리 정부와 기업, 각 개인이 4차 산업혁명 동향과 기술흐름에 주목하고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이번에도 고질적인 '냄비 근성'이 발현되는 것 아니냐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사용된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녹색성장'이나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같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 주요 정책 방향으로 다뤄지는 것도 문제다. 많은 투자를 하고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는 국가 연구개발(R&D) 정책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단기간에 끝나는 흐름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결과를 가져오는 폭넓은 현상이다. 4차 산업혁명 과잉의 시대, 관심은 나쁘지는 않지만 유행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박기효 과학기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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