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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소비자 힘으로 누르던 시대는 끝…실수 인정·사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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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최초 '경품전문' 최수진 변호사 "기업도 실수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

머니투데이

사진=박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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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경품의 시대다. 대기업, 중소기업을 불문하고 어느 기업이든 매일 한 곳 이상은 경품을 내걸고 이벤트를 진행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기업이 약속한 것과 다른 상품을 준다면 어떨까. 대기업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비자가 제대로 따지고 약속했던 상품을 받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대기업, 그것도 모두가 아는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약속대로 경품을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 두 번이나 이긴 변호사가 있다. 법무법인 메리트의 최수진(44) 변호사다.

최 변호사는 지난 2010년 일명 '베스킨라빈스의 굴욕'으로 불리는 사건의 주인공이다. 당시 베스킨라빈스는 해외여행 항공권과 숙박권을 지급하는 경품 행사를 진행했는데, 당첨자인 최 변호사에게 약속한 대로 경품을 주지 않아 소송을 당했고 졌다. 지고도 법원이 결정한 배상금 110만원을 지급하지 않고 버텨 본사 에어컨 4대를 압류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당시 사건이 알려지면서 최 변호사는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최다르크' '경품전문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 '베스킨라빈스' 사건에서는 당사자였지만, 이번에는 의뢰인을 대리했고 이겼다. 이번 상대는 전 세계 60여 개국에 2만여 개 매장을 가진 자타공인 세계 최대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였다.

지난 24일 법원은 스타벅스에게 경품에 당첨된 소비자에게 229만3200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스타벅스는 1년 동안 매일 음료 쿠폰을 준다는 경품 행사를 하고는 막상 당첨자에게 '실수가 있었다'며 음료 쿠폰 한 장만 줬다가 소송을 당했다.

사건은 지난해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모씨는 스타벅스가 진행하는 이벤트에 응모해 1년간 매일 음료 쿠폰을 주는 경품에 당첨됐다. 하지만 하루 쿠폰이 오고는 더 이상 상품이 지급되지 않자 스타벅스에 문의를 했다. 돌아온 대답은 '원래 상품이 음료 쿠폰 한 장인데 공지에 실수가 있었다'는 것. 스타벅스 측은 고씨가 항의하자 처음에는 쿠폰 다섯 장을 주겠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쿠폰 스무 장과 다이어리를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고씨는 스타벅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사과를 원했다. 홈페이지에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지해 달라는 것. 스타벅스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달여 실랑이 끝에 결국 고씨는 소송을 냈다.

고씨가 처음부터 소송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생에 한 번 하기도 힘든 것이 소송이다. 크지 않은 돈 때문에, 그것도 경품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하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싸움을 하겠다고 나서기는 어렵다. 이번 스타벅스 경품 행사만 해도 100명의 당첨자가 있었지만 소송까지 한 소비자는 고씨가 유일하다.

"소비자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것은 쉽지 않죠. 고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소송을 하면서 보인 스타벅스의 태도는 적지 않게 실망스러웠어요. 베스킨라빈스 소송 때와 기업의 태도가 똑같았죠.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적당히 무마하고 넘어가려는 태도요. 스타벅스 측은 '1년간 쿠폰을 준다고 적힌 글씨가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당첨자들은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데 왜 너만 문제를 삼느냐'는 식으로 대응했어요. 단순 실수에 의한 오기일 뿐이라는 거죠.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었어요."

배상 금액을 두고도 실랑이가 벌어졌다. 스타벅스 측은 '무료 쿠폰을 배포하면 평균 92%의 회수율을 보이니 364장의 92% 비용만 지급하겠다', '쿠폰 금액에서 세금 22%는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송 중간 판사의 중재 시도도 있었지만 제대로 배상하지 않으려는 스타벅스의 태도와 이 과정에서 감정이 상한 소비자간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당초 고씨가 청구한 손배해상액을 모두 인정했다. 손배해상 청구 소송에서 청구 금액이 모두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드물다.

최 변호사는 경품을 둘러싼 분쟁은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전했다. 실제 관련 상담도 적지 않게 들어온다는 것이 최 변호사의 설명이다. 지난주만해도 의류 업체 경품 행사에 당첨된 소비자가 약속했던 상품이 아니었다며 상담을 해왔다고 했다. 다만 소비자들이 각종 기회비용을 고려해 소송까지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것 뿐이라는 것. 최 변호사는 기업들에게 소비자들을 힘으로 눌러 적당히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일침을 놨다. 기업도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이를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과거처럼 소비자들을 힘으로 누르고 적당히 무마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소비자들도 현명해졌고 자기 권리를 찾는데 주저함이 없죠. 실수가 있었다면 바로 사과하고 인정하고, 수습하고 회복해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누구나 실수는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역시 피해자는 스타벅스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사과하지 않는 태도에 화가 나서 끝까지 가게 된 거죠. 어떤 태도가 기업에게 도움이 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 변호사는 네티즌이 붙여준 '최다르크' 등의 별명에 대해 "과분한 것 같다"며 웃었다.

"전 그렇게 정의롭고 선한 사람은 아니에요. 사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문제 제기를 하고 자신의 침해된 권리, 뭉게진 자존심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사람들이 같은 소비자로서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성과를 낸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 것 같아요. '권리 위에 잠든 자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이 있어요.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보호를 받을 수 있죠. 하지만 권리 침해를 당한 소비자가 구제 받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잘못은 아닐 거에요. 권리 구제를 위해 들이는 노력과 스트레스 등은 적지 않으니까요. 본인의 선택이죠. 더 중요한 건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기업의 태도겠죠."

박보희 기자 tanbbang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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