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사를 하고 있는 양수핑 - SCMP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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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형기 중국 전문위원 =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미국 증시의 IT 버블을 두고 한 말이다. 이후 비이성적 과열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어구가 됐다. 이를 응용해 최근 중국인들의 행태를 ‘비이성적 애국심(irrational patriotism)’이라고 하면 안성맞춤일 듯싶다.
미국에 유학한 한 여학생이 졸업사에서 미국의 공기와 언론자유를 찬양하자 중국 누리꾼들이 조국을 욕보였다며 댓글 폭탄을 퍼부었다. 급기야 정부까지 나섰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모든 중국인들은 공공장소에서의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게 한나라의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야 할 사안일까? 중국의 비이성적 애국심이 도를 넘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중국 윈난성 출신의 양수핑이라는 학생이 지난 21일 메릴랜드 대학 졸업식에서 졸업사를 했다. 그는 졸업 연설에서 사람들이 왜 미국으로 유학 왔느냐고 물으면 항상 “깨끗한 공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중국에서 자랄 때 항상 마스크를 써야 했다. 중국에서는 자주 아팠지만 메릴랜드 공항에 내리는 순간 모든 것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곧 또 다른 종류의 깨끗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며 “그것은 언론자유, 즉 민주주의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유는 산소, 열정, 사랑이라며 연설의 끝을 맺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의 누리꾼들은 그가 조국인 중국을 욕보였다며 비난의 댓글을 쏟아 부었다. 심지어 같이 메릴랜드 대학에서 유학 중인 중국인 학생들이 중국이 자랑스럽다는 'Proud of China'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메릴랜드에 유학하고 있는 중국 학생들이 티셔츠에 'Proud of China'라는 글귀를 써넣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SCMP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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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양수핑은 구구절절 옳은 말만 했다. 그녀는 말문을 열기 위해 물리적 공기를 언급한 뒤 정말로 좋은 공기는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제3자인 한국인이 보기에는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연설이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비이성적 애국심으로 반응했다.
우리는 이미 중국인들의 이같은 행태를 본 적이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운동이다. 사드문제가 한중관계의 현안이 되자 중국의 누리꾼들은 온라인상에서 한국 상품 불매운동 등을 벌이며 사드배치에 격렬히 반대했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중국인들의 공격이 롯데를 겨냥했다는 점이다. 롯데가 무슨 죄란 말인가. 롯데는 선택권이 없었다. 정부가 롯데의 부지를 일방적으로 수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누리꾼들이 한국 정부를 겨냥했다면 그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애꿎은 롯데를 겨냥한 것은 비이성적 애국심이다.
더욱 문제는 양수핑 사건은 자발적이라는 것이지만 롯데는 중국 정부가 부추긴 측면이 크다.
비이성적 애국심을 부추기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사드 사태가 좋게 마무리됐다고 치자. 그러나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악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앙금은 한중관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복병으로 상당기간 잠복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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