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부다페스트 어느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는 상상을 해요. 고장 난 기차는 떠나지 않고 ― 고장 난 시계 때문인지 기차는 출발하지 않네요. 아직은 이른 계절입니다. 농장에서 라벤더를 수확해야 하고 수확한 라벤더로 잼을 만들어야 하는데, 길을 잃어버린 걸지도 몰라요. 수많은 길을 헤어 나오는 동안, 내가 가야 할 곳을, 내가 해야 할 것을 잃어버린 걸지도 모릅니다.
매일 아침,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기차를 타는 상상을 해요. 계절은 이르고,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빗물 고인 웅덩이를 바라봅니다. 웅덩이 아래로 부다페스트로 오고 가는 기차들이 보이나요. 아직 빗물이 마르기 전입니다. 아직 기차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를 읽고 왜 굳이 '부다페스트'인가라고 진지하게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질문은 부질없을 듯하다. 혹은 부정적인 맥락에서 단지 엑조틱(exotic)한 분위기를 마련하기 위해 동원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그건 지나치게 냉담한 읽기다. 그렇게 따지자면 김소월의 '삼수갑산'이나 백석의 러시아('나타샤')는 그저 김광균이 적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에 지나지 않는다. 시에 적힌 지명은 때로 행과 연 그리고 단어들 사이로 스며들어 그 정조를 확정하고 확장한다. '부다페스트'라… 이보다 더 쓸쓸하고 안타까운 지명이 있을까. 고백하건대 나는 한참 동안 '부다페스트' 대신 '시레토코'나 '함흥', '우수아이아', '프라하', 급기야는 '뉴올리언스'를 눈에 넣고 혼자 읽고 또 읽었는데, 아무래도 이 시에는 '부다페스트'가 딱이다. 채상우 시인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