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현장] 나비가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수요일은 소녀이거나 할머니다
광둥에서 왔다든가 말레시에서 왔다든가작년에도 열여섯, 올해도 열여섯잠을 잃어버린 소녀가 있다
청동 손가락으로 일기를 쓰고시간을 달리지만 일어서지 못하는결이 없는 소녀
시퍼런 강철 머리칼 속땅을 딛지 못한 맨발의 기억을 거닐며
눈빛이 내일로 기울어지듯숨결이 급한 발자국 소리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찡한 모자이크 말들해설퍼지는어깨 위 작은 새는 날아갈 줄 모르고
빈 의자에 귀를 기울이는신상품 같은 눈동자들이 주먹을 쥔 채가슴에 핀 꽃은 절대 꺾이지 않는다
소녀의 집에 가면 할머니가 사진에서 내려오고저물지 않는 그림자 옆으로세월이 와서 함께 앉는다
소녀의 얼굴에서 나비가 난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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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메모
수요일 낮 12시, 햇볕은 따스하다. 전철에서 내려 평화로까지 걸어가는 마음은 평화롭지 못하다. 수요 집회 날이다. 정오의 햇살을 받은 반대편 건물 유리창은 반짝였지만, 집회 장소는 그늘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훨씬 더 추웠다. 길원옥 할머니가 목도리를 두른 채 의자에 앉아 계셨다. 여러 단체들, 아이와 함께 온 어머니, 수녀님들, 가슴 뜨거운 국민들, 점심을 먹고 회사에 들어가려는 시민들까지 함께 했다.
'2015 한일 위안부 합의 원천무효' 피켓을 들고 외치는 사람들 목소리가 겨울을 가로지른다. 차가운 맨 바닥에 앉아 있는 시민들의 날 선 함성이 울려 퍼진다. '달려달려' 노래에 맞춘 평화 나비들의 날갯짓이 부풀어 오른다. 시낭송 하기 전부터 괜스레 울컥했다. 아니나 다를까 낭송 중에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민망했다. 겨우 겨우 마무리를 하고 내려왔다. 딸을 가진 엄마로서 할머니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딸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내내 가슴이 시렸다.
촛불의 힘으로 탄핵을 이끌어 냈다. 국민들의 힘으로, 시민들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것이다. 수요일만 되면 소녀상을 찾는 발길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차가운 바닥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불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나비가 자유롭게 하늘을 훨훨 날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수요일은 계속 될 것이다.
기자 : 봉윤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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