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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힌두교의 땅, 갠지스에 흐르는 숭배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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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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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 / 후후커플
● 후후커플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동반퇴사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난 조현찬(32)ㆍ연혜진(28) 부부다


인도는 우리 평생 꼭 가고 싶은 곳 중 하나였지만, 한편으론 가장 겁나는 나라 중 하나였다. 세계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아시아 국가들을 루트에 넣었던 것도, 오로지 인도에 오기 위함이었다. 학창시절 몇 번이고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책 '지구별 여행자'를 읽으면서, 인도를 여행하는 나를 상상해왔다. 하지만 인도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들도 무시할 순 없었다. 가장 더럽고 냄새나고 시끄럽고 성희롱이 난무한 나라, 그런데도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는 나라. 인도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네팔 국경에서 인도 입국 비자 도장을 받고 국경을 넘었다. 딱 한 걸음 차이였지만, 공기부터 달라진 느낌이다. 시끄럽게 빵빵거리는 소리에 정신없는 통에, 검은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릭샤꾼들이 우릴 에워쌌다. 자기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어리바리한 두 이방인을 그들이 놓칠 리 없었다. "릭샤? 릭샤? Where are you going?" 인도에는 사기꾼이 그렇게 많다던데, 길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이 다 우리에게 해코지할 것처럼 괜히 무서웠다. 잔뜩 긴장하며 걷다 보니, 이번엔 커다란 소가 길을 가로막는다. 우리, 정말 인도에 왔구나.

우리의 첫 목적지는 바라나시. 인도의 젖줄인 갠지스 강이 지나는 곳으로, '인도'하면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가트에 들어서자마자 우리가 맞닥뜨린 건 바로 소였다. 고 좁은 골목 사이사이 소들이 얼마나 많던지. 소가 많은 만큼, 소똥을 피해 가는 것도 일이었다. 인도에서 가장 더럽다는 바라나시에 온 것이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우리에겐 좁은 골목에서 소를 피해 가는 것도 힘들었다. 지나가는 현지인이 소 엉덩이를 한쪽으로 밀어주면 그제야 얼른 뛰어 지나가곤 했다. 소가 볼일을 보면서 몸에 닿지 않게 꼬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밖으로 튀겨내는데, 운이 나쁘면 소 배설물을 그대로 뒤집어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쏴아아 하고 수도꼭지를 세게 틀어놓은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면, 소가 볼일을 보고 있었다. 인도에 도착한 첫날, 생각했다. 우리 인도에서 한 달이나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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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가트 골목에 익숙한 한국어 간판들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능숙한 한국어로 말 거는 인도인들도 꽤 있었는데, 대부분 한국인을 대상으로 보트 투어를 하거나 악기, 매듭 공예 등을 알려주는 일을 했다. 그만큼 바라나시는 유독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저렴하고 맛집도 많고 넋 놓기 좋아서. 바라나시에 오면 꼭 하는 것 중 하나, 갠지스 강 보트투어를 했다. 매일 일출과 일몰 시각에 맞춰 보트를 타면 한국어가 유창한 인도인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책으로만 접했던 것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인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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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힌두교식 제사인 뿌자의식을 행하는 걸 볼 수 있다. 네다섯 명의 브라만 자제들이 의식을 행하면, 인도인들은 미간 사이에 빨간 가루를 묻히며 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다. 힌두교도가 아닌 나까지 절로 숙연해졌다. 매일 발전해가는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나에겐, 이 모든 게 낯설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그 당연한 것들을 잊고 살아왔다. 매일 신에게 감사하며 사는 이들의 삶은 얼마나 풍족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건 인도인들의 화장문화였다. 죽어서도 갠지스 강에 뿌려지는 걸 최고의 영예로 생각하는 그들을 위해, 화장터 바로 옆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위한 정부 지원 숙소까지 마련되어 있다. 보트가 화장터 앞으로 가자 절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인도인 선재는 화장터에서 절대 사진을 찍어선 안 된다며 당부한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직접 본다는 것만으로도 실례가 되는 일인데, 이를 사진 찍으면 하늘로 올라갈 영혼이 사진 속에 갇혀 올라가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우는 이가 없었다. 죽음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세상으로 잘 보내줄 수 있도록 축복해주기 때문이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을 잘 보내는 방법이라고 믿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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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다시 화장터를 찾았다. 하얀 상복을 입은 상주는 머리를 빡빡 밀고, 땔감을 사서 화장 준비를 마친다. 인도인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싼데도, 나무 땔감으로 태우는 걸 선호한다. 하층민들은 전기로 태워지거나, 태워지지도 못한 채 갠지스 강에 띄워지기도 한다. 갠지스 강에서 씻겨진 시체는 하얀 면으로 둘둘 쌓인 채, 땔감 위에서 하얀 재가 되어간다. 생전 처음으로 본 죽음이었다. 한 사람이 가루가 되기까지는 세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죽음 앞에선 모든 게 허망하고 허무하다. 평소라면 생각도 하지 않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걸 꺼린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곳 바라나시에선, 한 번쯤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무엇보다도 의연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인도인들을 보면서.

아아, 우린 인도에 대해, 그들의 문화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 인도인들에게 힌두교나 카스트제도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그들에게 갠지스 강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죄를 씻기 위해 아침마다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죽어서까지 갠지스 강에 뿌려지길 바라는 인도인들. 분명 이곳은 한마디로 형언하기 어려운 곳임이 분명하다. 삶과 죽음, 낮과 밤, 과거와 현재, 시작과 끝. 이 모든 극단적인 끝과 끝을 모두 생각하게 만드는 곳.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성직자)들은 산스크리트어와 경전을 배우고, 가장 낮은 불가촉천민들은 갠지스 강에서 시체를 씻기거나 태우는 일을 한다. 인도인들은 신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와 그들의 생, 업 (카르마)에 대해 진지하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해야 다음 생에 더 좋은 계급으로 태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폐지됐음에도 인도 사회 깊숙이 남아있는 카스트 제도는 사라져야 하지만, 나는 이들에게서 소명의식을 배운다. 주어진 일에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는 '소명의식'. 꼭 후생에 좋은 계급으로 태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제 일에 소명의식을 갖고 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한다. 전 직장에서 나의 미래를 그리면서 소명의식으로 임했을 때가 가장 열정적이었고 자존감도 높았을 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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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가트에서 바라본 갠지스 전경 / 후후커플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다행히 우린 이 더러운 바라나시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수없이 들었던 인도 성범죄 사건들과 위생 문제 등 괴담들이 떠올랐다. 당연히 방심해선 안 될 일이다. 나쁜 사람들보다 착한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 외국 여성 여행자들에게 터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조심은 하되, 너무 경계하며 여행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우린, 너무 겁먹은 나머지 먼저 손 내미는 이들의 마음조차 못 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빤히 쳐다보는 인도인들이 무섭게 보였지만, 그들은 단지 이방인에게 호기심이 많은 것뿐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인도에서의 첫발을 떼었다./ 후후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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