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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실종아동의날] "48년전 5살 원섭이를 제발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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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처녀가 장난감 사준다며 데려간 뒤 행방불명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뉴스1

한기숙씨가 48년 전에 잃어버린 아들 최원섭씨를 생각하면서 작성한 편지© News1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여보, 원섭이네 집으로 갑시다".
"원섭이네 집을 알아요? 알아야 찾아가지요"

최근 치매증세를 보이고 있는 남편이 48년 전에 잃어버린 아들 이름을 부르며 '만나러 가자'고 할 때마다 한기숙씨(77)는 세월의 풍파로 무뎌져 왔던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지난 1969년 큰아들을 잃어버리고 찾지 못했던 분노와 서러움에 화가 치밀었겠지만 기숙씨에게 한번도 책임을 묻는 말을 하지 않았던 남편이기에 기숙씨는 더욱 가슴이 미어진다. 살아 있으면 53세,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아들이다.

당시 남편은 퇴근하면 방 한쪽의 벽을 마주보고 앉아 슬픔을 못 이겨 자신이 입고 있던 속옷을 갈기갈기 찢어 냈다. 그해 겨울 찢어진 남편의 속옷이 한없이 쌓여만 갔다.

기숙씨는 48년이 지났지만 아들 원섭이를 잃어버렸던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1969년 9월22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던 기숙씨의 집에 이웃 처녀가 찾아와 선물을 사주고 싶다며 원섭이를 데리고 나갔다.

기숙씨는 "20대 초반에 공장에서 일한다던 그 여자가 그해 9월 초부터 동네에서 하숙을 했는데 원섭이를 유난히 예뻐했다"고 말했다. 22일 당일에도 "회사에서 보너스로 장난감을 주는데 원섭이가 직접 고르게 하고 싶다"는 말에 기숙씨는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 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경찰에 신고하고 그 여성의 하숙방에도 찾아가 봤지만 하숙방에는 화장품 몇개와 '박순희'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인주도 묻지 않은 도장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경찰도 다방면으로 수사를 했지만 원섭이와 그 처녀의 행방을 찾는데 실패했다.

원섭이를 찾기 위해 기숙씨 부부는 전국을 헤매기 시작했다. 한번은 제주도에 비슷한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아들이 아니었다. 매번 동행한 형사들의 교통비와 식비까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돈이 들었지만 기숙씨 부부는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전국 어느 곳이든 한달음에 달려갔다.

아이를 잃어버린 충격은 정신적 후유증으로도 나타났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이가 나를 부르는 것 같다"며 홀린듯 현관 밖으로 뛰어나가는 기숙씨를 남편이 붙잡아 함께 흐느끼며 밤을 새운 날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기숙씨는 아들을 잃어버리고 밑으로 자녀 3명을 더 낳고 세월도 50년 가까이 흘러 슬픔의 감정은 무뎌졌다고 했지만 "생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여전하다"고 말한다.

실종 당시 인근에 살던 부부가 불임 때문에 고민하다가 하숙집 처녀를 시켜 원섭이를 데려간 것이라고 기숙씨는 지금도 믿고 있다. 그는 "과거에 아이를 데려간 것은 전부 용서하고 법적인 책임도 묻지 않을 테니 왕래하고 가족처럼 지냈으면 좋겠다"며 "제발 연락을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오늘, 25일은 기숙씨 부부처럼 가족과 헤어진 실종아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환기하고 실종 예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세계 실종아동의날'이다. 세계 실종아동의날은 1979년 5월25일 뉴욕에서 6세의 에단 파츠(Ethan Patz)가 유괴돼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선포됐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보건복지부, 경찰청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페럼타워에서 실종아동의날 행사를 개최한다.

기숙씨는 이번 행사에서 실종가족을 대표해 잃어버린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다.

"너의 생일날이 되면 엄마는 또 네 생각이나. 얼마나 네가 보고 싶은지 말로 다 할 수 없단다. 한시도 너를 잊은 적이 없어. 사랑해 우리 아들 원섭아…" 꼭꼭 접어 아들의 사진과 함꼐 장롱 속에 넣어둔 기숙씨의 편지에서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뉴스1

한기숙씨가 지난 23일 경기 양주시 자택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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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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