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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차등의결권’이 구글의 성공 비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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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경련, 차등의결권 도입 주장하며 구글 사례 인용

구글은 경영권 안정보다 소통·다양성 등이 성공요인

차등의결권 도입한 기업들 장기 성과 악화 등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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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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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구글이 선택한 차등의결권,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래리 페이지 등 미국 구글 창업자들이 1주당 10배의 의결권을 갖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통해 구글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구글이 상장 뒤에도 단기 실적보다 장기적 가치에 중점을 둔 경영이 가능했다는 주장을 담았다. 구글은 그 결과 2004년에 견줘 2015년 매출액(24배)과 영업이익(30배), 고용(21배)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언론들은 한국경제연구원의 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기사를 썼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주장은 맞는 것일까? 구글이 차등의결권 주식을 바탕으로 외부 세력의 경영권 참여 없이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이후 구글의 성공을 차등의결권 주식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맞지 않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포드는 지난 22일 최고경영자(CEO) 마크 필즈를 퇴진시키고 자회사를 맡고 있던 짐 해킷을 그 자리에 앉혔다. 포드는 지엠(GM)과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빅3 자동차 회사 가운데 유일하게 올해 1분기 이익이 감소했다. 마크 필즈가 최고경영자로 일했던 지난 3년 동안 포드의 주가는 37%나 떨어졌다. 참다못한 포드의 주주들은 최근 주주총회때 반란을 일으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주주들은 창업자 헨리 포드의 후손들이 2% 미만의 지분으로 40%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폐기하자고 투표했다. 114년을 이어오며 차등의결권으로 보장해줬던 창업주 일가의 경영에 대해 미국 사회에서도 의구심이 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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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경영진과 직원들이 매주 금요일 대화를 나누는 TGIF 행사가 열리는 구글 식당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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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성공은 차등의결권 주식이 아닌 경영진의 소통 덕이 크다. 구글은 매주 금요일 오후 직원들이 식당에 모여 ‘T.G.I.F’ 행사를 연다. 레리 페이지 등 창업자들이 직접 나와 회사의 경영사정을 설명하고, 신제품 개발 방향 등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누구나 묻고 답할 수 있어서 활발히 의견이 개진되며 회사의 비전이 공유된다. 이런 문화 덕에 개발자들은 자유롭게 비판하고 또 비판받지 않기 위해 창의력을 최대로 발휘한다.

이밖에도 구글의 혁신 비결은 다양하게 분석된다.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우연히 만나 대화를 할 수 있게 사무실 내 공간을 일부러 배치한다거나, 채용을 할때 백인 외에 소수인종을 배려하는 채용을 확대해 다양성도 높인다. 수차례 면접을 거치는 등 채용을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도 특징이다. 그 자리에 사람이 없어 당장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100% 만족하는 사람이 없으면 공석으로 두는 원칙이 있다.

또 프로젝트에 대해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개선할 점을 찾는데 시스템을 집중한다. 2년 전 구글에서 만난 개발자 이동휘씨는 “구글에선 업무가 잘못되면 사후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실패 뒤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고 끝나면 발전이 없기 때문에 실무자와 책임자가 개선 의견 등을 담아 만든다”고 설명했었다.

그럼 왜 한국경제연구원은 차등의결권 도입 주장에 태평양 건너 기업인 구글을 붙인 것일까. 국내 재벌 총수 일가는 3∼4세에게 기업을 상속하는 과정에 있다. 그동안 재벌들은 순환출자나 일감몰아주기 등으로 경영권을 유지하고 물려줬지만, 순환출자와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상속세를 내는 과정에서 자녀 지분이 줄어드는 상황은 더이상 이런 방법을 쓰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자사주를 통해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높이는 방식도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선 상법 개정을 통해 불허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렇다면 재벌 총수일가가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고 자녀에게 넘겨주는 방법은 ‘의결권은 1주마다 1개로 한다’고 규정된 상법을 개정하는 것 밖에 별로 남는 카드가 없다. 재벌들의 모임인 전경련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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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본사 내부에 구글이 만든 운영체제(OS)인 &#39;아이스크림&#39; 등을 형상화한 조형물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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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국내 재벌의 숨은 속내와 달리 창업주 일가의 기업 상속을 위해 차등의결권 주식을 도입하지 않았다. IT벤처기업으로 출발할때 수익모델이 안정적이지 않고 창업자의 기술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단기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의 경영간섭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들은 세습 대신 인도 출신 순다 피차이에게 구글 최고경영자를 맡겼다. 순다 피차이는 구글에서 일을 시작한 엔지니어다. 구글을 모바일 퍼스트에서 인공지능(AI) 퍼스트 기업으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구글 역시 차등의결권 주식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창업자 그룹을 제외한 주주들은 주총에서 반대의견을 낸다거나 주주집단소송이 제기될 정도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구글의 기업공개 사례와 한국 IPO 제도에 대한 함의’, 김용기 아주대 교수 등)

자산총액 3조 달러를 초과하는 연기금 등이 모인 미국 기관투자자협의회(CII)는 지난해 신규 상장회사에 대한 차등의결권제도 배제 정책을 발표했다. 또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미국 스탠더드앤푸어스(S&P)1500 기업을 분석한 결과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회사의 경우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일반적으로 장기적 성과가 저조하고 이사회 내 다양성이 낮는 등 지배구조가 악화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을 성공으로 가는 ‘떡’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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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본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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