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3만호 앞둔 조선일보 발자취…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 기고]
일제 탄압에 259일 정간·5년 폐간, 6·25전쟁 당시엔 3개월 공백… 숱한 어려움 딛고 내달 3만호
국민의 성원과 언론인의 땀이 만들어낸 거대한 역사의 기록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언론사 |
조선일보가 지령(紙齡) 3만호 발행이라는 국내 최초의 기록 달성을 앞두고 있다. 한 달 뒤 6월 24일이 그날이다. 신문의 나이를 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창간 기념일을 기준으로 연도를 세는 경우와 하루 한 호씩 쌓아올린 지령으로 계산하는 나이다. 조선일보는 2020년 3월 5일에 창간 나이 100세가 된다. 100주년까지 3년이 채 안 남았으니 그것도 대단한 기록이다. 창간일 기준으로 나이를 세는 방식은 편리한 반면에 정밀하지는 않다. 중간에 건너뛴 발행 기간이 포함될 수도 있고 제호가 바뀌거나 격일간, 주간, 열흘에 한 번꼴인 순간(旬刊)도 창간 몇 주년을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발행 횟수에 따라 한 호씩 더해가는 지령으로 따지면 정밀한 나이가 산출된다. 신문이 중단된 기간은 건너뛰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 계산한 3만호는 우리 신문 역사상 조선일보가 처음이다. 경하할 일이다.
3만호의 나이테에는 엄청난 분량의 현대사가 담겨 있다. 평면으로 지면을 펼치면 얼마만 한 넓이가 될까. 가늠하기 어렵지만, 한반도 전체를 뒤덮고도 넘치지 않을까. 대판 지면 하루 50면 전후, 10만부터 100만, 200만 단위에 달하는 부수를 전국 독자들에게 배포했던 지면을 길이로 이어본다면 또 어떤 결과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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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한 바퀴가 아니라 몇 바퀴를 돌고도 남을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이 광대한 지면에는 우리 민족이 살아온 모습과 사상을 날줄, 씨줄로 엮은 역사가 깨알 같은 글과 사진으로 축적되어 있다. 소중한 국가 민족적 기록유산이다.
지령 5000호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4월 28일 자였다. 1920년 3월 5일 창간으로부터 15년이 소요되었다.
중간에 총독부의 탄압으로 네 차례 정간 처분을 당해서 발행되지 못했던 259일과 정간 해제 후에도 즉시 속간이 어려웠거나 재정난으로 신문을 내지 못하였던 기간이 있었다. 5000호 고지는 그런 곡절을 겪으면서 어렵사리 도달했다.
1만호는 1955년 3월 23일에 발행되었다. 창간 35주년 직후였다. 1940년 8월 10일 총독부의 강제 폐간 명령으로 5년 이상 신문은 죽어 있었고, 북한군의 6·25 남침으로 서울이 점령당했던 3개월 암흑기의 중단으로 인해서 5000호를 더하는 데 20년이 소요된 것이다. 2만호는 1986년 4월 4일, 창간 76주년을 넘긴 한 달 후였다. 정상적인 발행이었다면 조·석간 하루 두 번 발행 20여년을 제외하더라도 2만4120호를 넘겼어야 할 시점이었다. 하지만 신문 발행에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사실도 격동의 현대사를 증언하는 침묵의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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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호에 도달하기까지 지면에 수록된 수많은 사건과 역사의 현장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은 또 얼마나 많을까. 항일 독립운동가, 국가 발전에 기여한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 인물들이 기사의 소재가 되어 남아 있다. 친일 매국노, 파렴치 사기꾼, 살인범, 도둑과 같은 사회의 어두운 장막 뒤에 숨어 있던 사람들도 얼굴을 드러낸다.
글을 쓴 수많은 논객과 문인, 전문 필자들은 연구의 대상이다. 국가의 발전과 경제성장이 신문을 키워주었다. 일제강점기 지령 5000호 사설은 말했다.
신문을 만든 소속사 언론인들의 땀과 노력과 노심초사도 컸지만 만천하 독자 제씨의 적극적 지지가 더 중요하다고. 지령 3만호는 조선일보만의 자랑이 아니다. 전 국민의 성원이 담겨 있는 역사의 거대한 기록이자 상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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