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경제부 기자 |
이달 10일 처음 출근한 신입직원이 22일 연차휴가를 냈다. 평일 기준으로 8일, 일이 많아 주말에도 나왔다지만 고작 12일 근무하고서 휴가를 썼다. 이 ‘간 큰 신입직원’은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대선 기간에 문 대통령은 근로자들이 연차휴가를 100%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15일인 연차휴가를 20일로 확대하고, 1년 미만 비정규직 근로자에게도 매월 하루 유급휴가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번에 연차휴가를 사용함으로써 대통령이 앞장서 공약 실현의 의지를 보인 것이다.
대통령이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제대로 휴가를 쓰진 못했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 휴가도 업무의 연장처럼 여겼다. 대통령의 휴가엔 늘 ‘정국구상’이란 단어가 따라붙었다. 머리를 비우고 돌아와 사무실에서 구상하면 안 되는 건지. 직전 대통령은 한술 더 떴다. 취임 첫해를 제외하곤 휴가 기간 관저에서 ‘밀린 서류’를 봤다고 한다.
아랫사람들도 눈치가 보일 수밖에. 지난해 1년 동안 정무직 공무원이 사용한 휴가는 평균 4.1일에 불과했다. 여름휴가를 이용해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자리 현장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조선업 현장을 둘러봤다. 각 부처는 휴가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며 ‘미담’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밤낮없이 일했다던 정부의 생산성이 그다지 높진 않았다는 걸.
민간도 마찬가지다. CF의 한 장면이 현실을 재미있게 풍자한다. ‘일 없으면 퇴근하라’는 부장의 한마디에 사무실엔 생기가 돈다. ‘불금인데 부장님은 뭐 하실 거냐’고 묻자 ‘난 야근해야지 뭐’라는 말이 돌아온다. 부하직원들은 부랴부랴 재킷을 벗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칼퇴근’조차 모험인데 휴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바탕으로 추정하면 직장인들이 사용하지 못해 사라지는 휴가가 연 1억2000만 일에 이른다.
이런 현실에서 취임 첫 달에 공개적으로 연차휴가를 사용한 문 대통령의 시도는 신선했다. 다만 북한 미사일 발사 때문에 그 하루도 맘 편히 쉬지 못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일복이 많아 쉴 팔자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못 쉴 팔자’라며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도 대통령이 꼬박꼬박 휴가를 사용하길 바란다. 휴가를 마치고 거창한 정국구상을 내놓길 기대하지도 않겠다. 푹 쉬다 오면 그만이다. 가능하면 관저나 사저에 머물지 말고 국내 여행 활성화를 위해 여행을 떠나 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런 방식으로 제대로 쉬어야 일도 잘한다는 상식이 공직사회로, 공공기관으로, 민간기업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쓸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의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대기업들도 자사의 휴가제도만 홍보할 게 아니라 납품기일을 연장해 주는 등의 노력을 통해 협력업체인 중소기업들도 함께 휴가를 쓸 수 있게 상생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올해 말엔 “일복 많은 대통령이 쉬지 못할 팔자여서 밤낮없이 일만 했다”는 얘기보단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연차휴가를 100% 소진했다”는 진짜 ‘미담 기사’를 보고 싶다.
김재영 경제부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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