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일가의 얼굴만 봐도 눈물을 흘리도록 세뇌시키는 북한. 아리랑 공연에 참가한 이 여인의 얼굴을 통해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다. 동아일보DB |
주성하 기자 |
‘파블로프의 개’로 유명한 러시아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는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크렘린 혁명정부에 불려갔다. 깜짝 등장한 ‘혁명의 아버지’ 블라디미르 레닌은 그에게 연구 성과를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레닌은 400쪽의 보고서를 단 하루 만에 다 읽고 이튿날 파블로프를 불렀다. 그는 매우 감격한 표정으로 “이로써 혁명의 미래가 보장됐다”고 말했다. 레닌은 대중에게 박혀있는 제정 러시아의 전통과 사고방식을 개조하고 사회주의 사고를 세뇌하기 위한 심리 조종 기술을 손에 쥔 것이다. 파블로프에겐 이후 온갖 특혜가 베풀어졌다.
레닌이 죽고 이오시프 스탈린이 집권한 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줄줄이 체포된 스탈린의 혁명 동지들이 공개 재판장에서 완전히 조작된 자신의 혐의에 대해 변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를 반역자나 살인자라고 자인하며 사형시켜 달라고 애원했다. 6·25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53년에는 포로가 된 미군 고위 장교들과 병사들이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미국을 비난하며 고국에 가길 거절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놀란 미국은 심리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공산주의 국가에서 실행된 심리 조작 기술을 분석한 중앙정보국(CIA)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소련이 죄수의 의식을 무너뜨린 뒤 거짓을 진실로 믿게 만드는 정교한 단계별 세뇌 과정을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이 내용들은 일본의 유명 심리학자 오카다 다카시의 대표 저서 ‘심리 조작의 비밀’에 나오는 것이다. 다카시는 일본 ‘옴진리교’나 미국의 ‘인민사원’ 등 컬트 종교(교주가 광적인 사람들에게서 숭배받는 소수 사이비 종교)와 테러리스트를 집중 연구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 CIA 보고서, 중국에서 체포돼 사상 개조를 받은 서방인 수십 명을 면담해 작성된 미국 정신과 의사 로버트 제이 리프턴의 저서 ‘사상개조와 전체주의의 심리학’을 토대로 이런 결론을 내린다.
“전체주의나 파시즘, 컬트 종교는 지극히 비슷한 특성을 지녔다.”
이 셋의 공통점은 소속원의 심리를 조작해 집단 최면 상태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다카시는 사상 개조를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8가지 요소와 심리 조작의 5대 원리를 정리해 발표했다.
8대 요소엔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지도자에 대한 신비감을 만들며, 자아비판과 타인에 대한 비판을 강요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한 소속원에겐 ‘해방’ ‘인민’ ‘제국주의’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주입하며, 이념을 위해선 자기를 서슴없이 바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생존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각인시킨다.
5대 원리에는 정보 입력을 제한하거나 과잉되게 하며, 뇌를 지치게 해 생각할 여유를 빼앗는 동시에 자기 판단을 불허하고 의존 상태를 유지시킨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이런 요소와 원리를 대입해보면 북한을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왜 쥐꼬리만 한 배급을 줘 굶주린 인민을 ‘100일 전투’나 ‘200일 전투’에 쉬지 않고 내모는지, 왜 생활총화와 각종 강연회로 정신없이 들볶는지, 북한 TV에서 김정은 찬양가가 고성으로 쉴 새 없이 나오는 이유는 뭔지 등이 납득된다.
또 3대 세습 김씨 일가가 왜 운명적 공동체를 쉼 없이 강조하면서도 숙청을 끊임없이 일삼고 있는지, 왜 북한은 개방이란 단어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지 등 수많은 의문도 한꺼번에 풀린다. 남쪽 탈북민 사회에서 나이 들어 온 사람일수록 특정 정파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거나 또는 맹렬한 적의를 불태우게 되는지도 이해가 가능하다.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 ‘적’ 아니면 ‘아군’으로만 나누도록 오랫동안 세뇌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선전 담당 부서엔 세계 최고의 심리 조작 전문가들이 있을 것 같다. 김정은이 물려받는 통치술 중에는 옛 소련과 중국에서 물려받고 북한 나름의 경험까지 합쳐 집대성한 세계 최고 수준의 정교한 심리 조작과 집단 최면에 관한 기법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김정은은 스스로가 강력한 최면에 걸려있는지도 모른다.
북에서 대학을 나와 남에서 15년 넘게 북한을 관찰한 필자는 안타깝지만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다.
“북한은 심리 조작으로 집단 최면에 걸린 사회다.”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남북 교류는 활성화될 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북한 사람이 갑자기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거든 ‘심리 조작과 집단 최면’이란 단어를 떠올리길 권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좋은 교육과 가정을 가진 평범한 이웃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거나 테러리스트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북한의 집단 최면은 어떻게 깨야 할까. 이에 대한 다카시의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화하고 논쟁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만나는 수밖에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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