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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칸, TV에 빗장 풀었다… "名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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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회 칸 영화제]

캠피언 감독 '톱 오브 더 레이크'

바쟁 극장서 6시간 동안 상영, 70년간 고수한 'No TV' 원칙 깨

일각선 "순수성 해친다" 비판

제인 캠피언(63)과 데이비드 린치(71) 감독은 칸 영화제가 사랑하는 명장(名匠)들. 두 감독의 작품이 칸에서 상영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른 의미에서 화제다. 두 사람 모두 영화가 아닌 TV 시리즈를 들고 칸에 왔기 때문이다.

올해 칸 영화제는 70년 역사 내내 고수해온 '노(No) TV' 원칙을 스스로 깨뜨리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23일 페스티벌 궁의 바쟁 극장에서는 캠피언 감독의 '톱 오브 더 레이크: 차이나 걸(Top of the Lake: China Girl)'이 6시간 동안 상영됐다. 미국 선댄스TV와 영국 BBC 등이 함께 만든 6편짜리 TV 시리즈. 2시간 간격으로 휴식이 있었지만 280개 좌석을 꽉 채운 관객 가운데 중간에 자리를 뜨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니콜 키드먼 등 특급 배우들의 연기는 명불허전. 스크린으로 봐도 화질이나 음향에 손색이 없었고, 감독 특유의 명상적 카메라 워크와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을 우아하게 포착하는 연출력도 그대로였다. 캠피언 감독은 현지 회견에서 "6개 장으로 구성된 총 6시간 분량의 영화로 봐 달라. 작품을 요리한 '셰프'를 신뢰하는 관객들에겐 유일무이한 체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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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 시각) 칸 영화제에서 상영된 TV 시리즈 ‘톱 오브 더 레이크’에 출연한 배우 그웬돌린 크리스티(왼쪽부터)와 엘리자베스 모스, 니콜 키드먼.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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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에는 데이비드 린치가 1990년대 초 컬트적 인기를 끈 자신의 TV 시리즈 '트윈 픽스(Twin Peaks)'를 새로 만든 리부트 판이 상영된다. 캠피언은 '피아노'(1993)로, 린치는 '광란의 사랑(Wild at Heart·1990)'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특히 캠피언은 황금종려상을 단독수상한 유일한 여성 감독이며, 칸의 심사위원장도 지냈다. 영화제 측은 두 감독의 작품을 경쟁 부문 다음으로 중요한 비경쟁 부문에 초청해 예를 갖췄다.

티에리 프리모 칸 집행위원장의 TV에 대한 발언도 살짝 바뀌었다. 작년에 그는 "칸은 영화 축제다. TV 시리즈는 그들만을 위한 별도의 축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TV는 집에 가서 보라'는 뜻. 그런데 올해는 "TV 시리즈라 해도 고전적 영화 제작과 방식은 같다. 중요한 두 감독이 지금 만든 것이 우연히 TV 시리즈인 것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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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시리즈 ‘톱 오브 더 레이크’의 한 장면. /칸 국제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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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에는 매체 환경과 영화 산업의 변화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리들리 스콧, 데이비드 핀처, 코엔 형제 등 '작가' 영화 감독들이 초특급 배우들을 이끌고 TV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된 이야기. 많은 영화제가 TV 부문을 신설하며 변화에 편승했다.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수준 높은 작품에 목마른 칸 역시 영화제가 사랑하고 지지했던 감독들이 만든 TV 시리즈를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지역적 배경도 있다. 영화제가 열리는 칸에서는 내년 초 8일간 첫 TV 페스티벌인 '칸 시리즈'가 열린다. 영화를 넘어 TV까지 영역을 확장하려는 칸 시(市)의 야심찬 신규 사업. 영화제 역시 어느 정도 발을 맞춰야 했다는 뜻이다.

반발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다국적 배급사 IM글로벌의 스튜어트 포드 사장은 "칸은 영화제로서 순수성이란 게 있다. 무슨 콘테스트 페스티벌 같은 게 아니다"고 했다. 반면 '원더스트럭'으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캐롤'의 토드 헤인즈 감독은 "TV라는 매체보다, 두 감독이 그 매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무슨 성취를 이뤘는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했다.

올해 칸에는 '버드맨' '레버넌트'를 만든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6분 30초짜리 가상현실(VR) 영화 '카르네 이 아레나'도 초청됐다. 프리모 위원장은 "영화는 여전히 독자적 예술이지만, 영화제를 둘러싼 세상이 갈수록 TV와 가상현실을 주목한다는 것도 외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칸=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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