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아지트 파이 신임 위원장이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확립한 ‘망 중립성’ 원칙은 실수라며 규제 완화에 나설 뜻을 밝혔다.
이러한 배경에는 미국 인터넷 업계의 투자를 늘리고, 소비자의 선택 폭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해야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망 중립성 도입 여부 혹은 관련된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각 국별로 입장차가 뚜렷하다. 국가별로 통신 시장의 경쟁 활성화 수준, 도매규제 유무, 글로벌 경쟁력 수준 등에 따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망 중립성의 도입에 있어 주목할 점은 글로벌 스마트 미디어 시장에서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의 영향력 확대다. 특히 글로벌 콘텐츠 시장과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의 전개 상황을 감안하면 망 중립성 이슈는 글로벌 자본 이동과 무역 이슈로 다뤄질 가능성도 크다.
ICT(정보통신기술) 생태계와 산업 성장을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단순히 국내 이슈로만 다뤄서는 안 되며 정책도 국내 시장 방어적 관점에 그치기보다는 적극적인 세계시장 공략 관점에서 수립될 필요가 있다.
망 중립성과 유사한 개념으로 플랫폼 중립성이 있다. 플랫폼 중립성은 개방적 인터넷 구조가 이용자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플랫폼 내에서 서비스 혹은 트래픽을 차별화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관련 법령상 지위 등을 일부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플랫폼 산업은 규제보다 업계 자율에 의한 성장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플랫폼 사업자들은 국내·외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글로벌 사업자들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최근 들어 미디어·통신·플랫폼 산업의 진화 과정에서 사업영역 간 경계가 무너지며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고 해외 거대 플랫폼의 국내 시장 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과 국내 통신사업자 간 이해관계 충돌 사례에서 보듯이 플랫폼의 영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대되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과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은 사업 영역이 확장되면서 뉴스 중개 등을 통한 여론 영향력 뿐 아니라 플랫폼을 이용한 방송 시청 증가에 따른 방송 매체로서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다만 가짜 뉴스와 포털 검색어 순위 조작 등의 부작용과 함께 콘텐츠 접근성과 다양성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플랫폼 중립성이 ICT 생태계의 중요한 요인으로 떠오른 이유는 플랫폼이 갖는 양면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모두 고객이 되는 양면 시장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 규모가 커지면 특정 플랫폼으로 쏠림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 독점 또는 소수 사업자만이 남게 된다. 플랫폼 시장이 독과점 체계로 바뀌면 동일 시장 내에서 신규 플랫폼의 진입은 매우 어려워지게 되고 이에 따라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의한 시장 지배력 남용 및 불공정행위의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이같은 시장 지배력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사후 규제가 쉽지 않다.
해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제도 문제다. 플랫폼 중립성을 통해 국내 사업자에게만 의무를 부여하고 해외 사업자에게는 의무를 부여하지 않을 경우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방송통신 관련 법·규제를 살펴보면 국내외 플랫폼을 규제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방송과 통신 부문에 대한 규제에 집중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다.
독일의 경우 디지털 시장에서의 공정경쟁을 위한 시장상황 모니터링 기관 설치를 통해 디지털 플랫폼 관련 법·규제 체계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경우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규제를 위한 공화(共和) 규칙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단말(CPND) 간 융합생태계 조성을 위한 새로운 정책 방향을 통해, 방송통신 산업의 재도약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신민수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