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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다니엘 린데만의 비정상의 눈] 성추행에 관대한 독일법 … 엄격한 한국에서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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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다니엘 린데만 독일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얼마 전 촬영 때문에 독일에 다녀왔다. 현지에서 일정을 마치고 친구들과 뒤풀이를 하러 시내에 나갔다. 중간에 잠깐 화장실에 가려고 다른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는데 어떤 여성이 다가와 내 엉덩이를 만지곤 얼른 자기 일행에게 돌아갔다. 그러곤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것처럼 떠들고 웃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그냥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성추행은 남녀 모두 당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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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당하니 2015년 12월 31일과 다음 날 새벽 사이 독일의 쾰른 중앙역에서 벌어졌던 집단 성추행 사건이 떠올랐다. 독일 문화와 법을 잘 모르는 1000여 명의 남성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역을 지나가던 여성 수십 명을 상대로 성추행을 벌였다. 경찰이 현장에선 아무도 체포하지 못해 더욱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은 거의 1년간 독일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렀다. 그래서 만일 문제의 그 여성을 신고한다면 경찰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관련법을 뒤져 봤더니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독일에선 직장 성희롱이나 강제 성관계는 당연히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직장이 아닌 곳에서 벌어지는 성추행, 예를 들면 신체 일부를 만지거나 억지로 입맞춤이나 키스를 하는 경우엔 처벌 기준이 좀 묘하다. 폭행이나 협박이 동반돼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이 옷을 갈아입거나 샤워하는 것을 몰래 훔쳐봐도 협박이나 폭력이 없었다면 처벌이 어렵다. 다만 독일은 모욕이나 욕설에 대해선 처벌이 엄격한 편이다. 이성의 명예를 훼손하는 성적인 발언이나 욕설을 하면 처벌받는다. 그래도 신체 부위 접촉은 모욕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성추행에 관한 한 한국은 독일보다 더 엄격하다. 형법 제298조는 강제추행을 ‘폭행 또는 협박을 이용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접촉 행위’로 규정한다. 성추행은 ‘피해자 입장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라는 성립 요건이 있다는 게 독일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이 때문에 찜질방이나 버스·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의도치 않게 신체접촉을 했다고 주장해도 당한 사람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이 규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법 규정은 피해자의 개인적인 느낌, 즉 피해자의 수치심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독일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독일도 이런 한국 법에서 영감을 얻어 더욱 엄격한 성추행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니엘 린데만 [독일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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