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논설위원 |
김정 화백은 “정확한 연유는 몰라요. 다들 그렇게 불렀죠. 혹시 아라비아인 발톱이 긴 건 아닐지, 그런 속설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장 선생께 물어보려 했으나 야단맞을까 그만두었어요”라며 웃었다. 그가 에피소드를 하나 꺼냈다. 그날 좁디좁은 욕탕에는 함께 스케치 여행을 떠난 화가 아홉이 들어갔다. 서로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 장 선생 발톱이 앞사람 엉덩이를 찔렀다. 무안했던 장 화백이 입을 열었다. “허허허허, 여기서 딱 한잔하면 더 괜찮아요.” 꽤 술을 즐겼던 장 화백만의 위기 탈출법이랄까, 주변에서 폭소가 터졌다.
제자 김정은 장욱진의 초상을 모두 64점 남겼다. 67년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에 있던 스승의 화실을 처음 방문한 날부터 89년 스승이 세상을 떠나기 전해까지 장 화백의 24년을 담았다. 해맑게 웃거나, 담배를 태우거나, 밥을 먹거나, 기차에서 졸거나, 스케치를 하거나 등등, 스승의 표정·동작을 일일이 기록했다. 한 화가가 다른 화가의 모습을 이처럼 오래 지켜본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이다. 제자는 해당 작품을 지난해 경기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 기증했고, 최근 그 그림을 묶은 『장욱진 초상 드로잉』이 나왔다. 사제지간의 정다운 동행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목인 장욱진 화백 탄생 100년을 맞아 요즘 기념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내일 장욱진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심플 2017’을 비롯해 서울·부산·세종시 등 전국 곳곳에서 특별전이 열린다. 나무·새·가족·아이·해·달·집 등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 풍경을 동화처럼 빚어낸 장 화백의 재발견이다. 하루하루 등 터지듯 다투는 도시인이 잠시나마 쉬어 가는 휴양림 역할을 한다. 남녀노소 모두 빠져들 수 있는 담박한 그림들이다. 보는 이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감돈다.
그 스승에 그 제자일까. 김정 화백이 도록 말미에 장난기 가득한 시(?)를 남겼다. ‘장독대엔 묵은장, 부산엔 온천장, 덕소엔 욱진장’ ‘매운맛은 고추장, 감칠맛은 청국장, 사람맛은 욱진장’. 역시 사람 맛이 최고다.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기자 park.ju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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